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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버지와 함께한 비디오테이프 시절의 아날로그 추억
제게 이 영화는 단순한 코미디 작품 그 이상의 의미를 지니고 있습니다. 아주 어린 시절, 주말 저녁이면 아버지의 손을 잡고 동네 골목귀퉁이에 있던 비디오 대여점에 가고는 했습니다. 수많은 비디오테이프 사이에서 어떤 것을 고를지 행복한 고민에 빠졌던 그때, 아버지가 환하게 웃으시며 골라오신 영화가 바로 <경찰서를 털어라>였습니다. 비디오 데크가 테이프를 ‘척’ 하고 삼키는 소리와 함께 TV 화면에 지지직거리는 노이즈가 지나가고 영화가 시작되던 그 순간의 공기가 아직도 생생하게 기억납니다. 당시 어린 나이였던 제 눈에 비친 이 영화는 그야말로 ‘신세계’였습니다. 보석을 훔친 주인공이 신축 중인 건물의 환기통 속에 보석을 숨겨두고 체포되었다가, 2년 뒤 출소해서 찾아갔더니 그 건물이 하필이면 ‘경찰서’로 변해 있었다는 설정 자체가 어린 마음에도 너무나 신박하고 충격적이었습니다. 세상에 많고 많은 건물 중에서 가장 피해야 할 경찰서에 보석이 갇히다니, 주인공의 기막힌 운명에 저도 모르게 몰입해 손에 땀을 쥐고 보았습니다. 거실 바닥에 아버지와 나란히 누워 배를 잡고 떼굴떼굴 구르며 웃었던 기억이 납니다. 아버지는 평소 무뚝뚝한 편이셨는데, 이 영화를 보실 때만큼은 소년처럼 꺼이꺼이 소리를 내며 웃으셨습니다. 주인공 마틴 로렌스가 능청스럽게 가짜 형사 흉내를 내며 위기를 모면할 때마다 아버지와 저는 서로 마주 보며 박수를 쳤습니다. 이제는 비디오테이프도, 동네 대여점도 모두 사라진 아날로그의 유물이 되었지만, 이 영화를 떠올릴 때마다 함께 피어오르는 아버지와의 따뜻한 추억과 거실 가득했던 웃음소리는 제 마음속에 가장 소중한 보석으로 남아있습니다.
영리한 설정과 마틴 로렌스의 신들린 능청 연기
영화 <경찰서를 털어라>를 성인이 된 지금 다시 보아도 전혀 촌스럽지 않고 감탄이 나오는 이유는, 촘촘하게 짜인 극적 구조와 캐릭터의 힘 덕분이라고 생각합니다. 도둑이 보석을 찾기 위해 경찰로 위장해 경찰서로 제 발로 걸어 들어간다는 아이러니는 코미디 영화가 가질 수 있는 최고의 설정입니다. 가장 위험한 곳이 가장 안전한 곳이 된다는 역설을 이토록 유쾌하게 풀어낸 시나리오의 힘에 다시 한번 감탄하게 됩니다. 특히 주인공 ‘마일스’를 연기한 마틴 로렌스의 연기는 그야말로 압권입니다. 어설픈 가짜 형사 행세를 하는데, 오히려 진짜 형사들보다 더 거칠고 수사력이 뛰어난 것처럼 보이는 상황들이 연속해서 터질 때마다 카타르시스가 느껴집니다. 그중에서도 제가 생각하는 이 영화 최고의 명장면은 단연 ‘화장실 악수 장면’입니다. 화장실에서 볼일을 보고 손도 씻지 않은 동료가 너무나 반갑게 악수를 청할 때, 주인공이 어떻게든 그 손을 피하려고 필사적으로 눈동자를 굴리며 능청을 떠는 모습은 정말 숨이 넘어갈 정도로 웃겼습니다. 싫은 티를 팍팍 내면서도 결국 어쩔 수 없이 손을 맞잡아야 하는 그 난감한 상황을 온몸으로 표현하는 연기력은 코미디의 진수를 보여줍니다. 단순히 슬랩스틱으로만 웃기는 것이 아니라, 범죄자가 엉뚱하게도 유능한 경찰로 인정받아 가며 겪는 심리적 압박감과 그 안에서 발생하는 반전들이 영화의 긴장감을 끝까지 유지해 줍니다. 겉으로는 가볍고 유쾌한 오락 영화를 표방하고 있지만, 그 이면에는 인간의 선과 악, 그리고 상황이 사람을 만든다는 묘한 메시지까지 영리하게 담고 있는 수작이라는 생각이 듭니다.
시대를 초월해 웃음을 주는 웰메이드 코미디의 힘
결론적으로 <경찰서를 털어라>는 제 인생의 한 페이지를 장식한 최고의 코미디 영화이자, 세월이 흘러도 빛바래지 않는 명작입니다. 최근 제작되는 많은 코미디 영화들이 자극적인 대사나 과도한 연출에 기대어 억지웃음을 유발하곤 합니다. 그에 반해 이 작품은 상황이 주는 자연스러운 유머와 배우의 탁월한 개인기, 그리고 깔끔한 기승전결이 완벽한 조화를 이루고 있어 보는 내내 불편함 없이 순수한 웃음을 짓게 만듭니다. 어릴 적 아버지가 골라주신 비디오테이프로 시작된 이 영화와의 인연은, 성인이 된 지금도 삶이 지치고 무료할 때마다 꺼내 보는 저만의 ‘비타민’ 같은 존재가 되었습니다. 영화 속 마일스가 사방이 적인 경찰서 안에서 특유의 임기응변과 긍정적인(?) 마인드로 위기를 기회로 바꾸어 나갔듯이, 우리네 인생도 때로는 예상치 못한 ‘경찰서’ 같은 난관에 부딪히더라도 능청스럽고 유쾌하게 헤쳐 나갈 수 있는 지혜가 필요하지 않을까 하는 엉뚱한 상상도 해보게 됩니다. 소중한 사람과 함께 아무런 걱정 없이 한바탕 크게 웃고 싶으신 날이 있다면, 혹은 옛 시절의 아날로그 감성과 시원한 액션 코미디가 그리운 분들이 계신다면 이 영화를 꼭 다시 한번 감상해 보시기를 정중히 권해드립니다. 오랜 시간이 지났어도 여전히 빛나는 마틴 로렌스의 능청스러운 미소가 여러분의 지친 일상에 청량한 웃음을 선물해 줄 것이라 확신합니다. 부족한 글 끝까지 읽어주셔서 진심으로 감사드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