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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지하의 추억과 영화가 준 기묘한 기시감
영화 <기생충>을 처음 마주했을 때, 제 머리를 강하게 내리친 것은 다름 아닌 '반지하'라는 공간이 주는 묘한 친숙함이었습니다. 반지하에 사는 가족이 우리 사회의 최상위층 가정에 위장 취직을 감행한다는 설정 자체가 정말 무릎을 탁 칠 정도로 신박하고 흥미진진하더군요. 그런데 영화의 초반부, 기택네 가족이 사는 반지하 집의 풍경이 화면 가득 펼쳐지는 순간, 저는 유쾌한 웃음 뒤편으로 가슴 한구석이 서늘해지는 기묘한 오버랩을 경험해야 했습니다. 사실 저 역시도 아주 어린 시절, 잠시나마 반지하 방에서 가족들과 옹기종기 모여 살았던 강렬한 기억이 마음 한편에 자리 잡고 있기 때문입니다. 당시 어린 제 눈에 비친 반지하라는 공간은 창문 너머로 지나가는 사람들의 발걸음과 자동차 바퀴가 눈높이에서 굴러다니는 아주 신기한 놀이터 같은 곳이었습니다. 하지만 비가 많이 내리는 여름철이면 집안 가득 차오르는 눅눅한 습기와 퀴퀴한 곰팡이 냄새는 어린 마음에도 마냥 유쾌하지만은 않은 현실이었습니다. 영화 속 기택네 집 창문으로 취객이 노상방뇨를 하려는 장면이나, 밖에서 스며드는 소독차 연기를 그대로 맞이하는 장면을 보며 저도 모르게 "맞아, 저땐 저랬지!" 하고 격하게 공감하며 실소를 터뜨렸습니다.
재미있는 점은, 그 시절의 저는 너무나 천진난만했던 탓인지 내가 자라서 저 높은 곳에 있는 '상위층'이 될 수 있다거나, 혹은 되어야겠다는 생각 자체를 아예 품어보지도 못했다는 사실입니다. 그저 주어진 하루하루를 가족들과 따뜻하게 보내는 것에 만족했을 뿐이었죠. 그래서인지 영화 속 기우와 기정이 신분을 위조하고 당당하게 대저택의 문을 두드리는 모습은, 어린 시절의 저라면 감히 상상도 못 했을 대담한 모험처럼 짜릿한 대리만족을 선사해 주었습니다. 빛바랜 기억 속 우리 집과 영화 속 반지하의 모습이 겹쳐지면서, <기생충>은 저에게 단순한 픽션이 아닌, 과거의 나를 소환하는 아주 특별한 타임머신이 되어 주었습니다.
그들의 기생과 상위층의 완벽하지 않은 빈틈
영화가 중반부로 치닫으며 기택네 가족들이 박 사장의 대저택에 마치 '기생충'처럼 하나둘씩 스며들어 취직하는 과정은 그야말로 한 편의 케이퍼 무비를 보는 듯 유쾌하고 통쾌했습니다. 그런데 여기서 우리가 주목해야 할 점은 이들의 취직이 단순히 사기와 요행으로만 이루어진 것이 아니라는 사실입니다. 가만히 따져보면 기우의 과외 능력, 기정의 세련된 미술 치료 및 심리 상담 실력, 기택의 베테랑 운전 솜씨, 그리고 충숙의 완벽한 살림 매뉴얼까지, 이들이 보여준 각각의 역량은 상위층인 박 사장 가족이 진심으로 필요로 하고 갈구하던 바로 그 능력들이었습니다. 이러한 전개를 지켜보면서 저는 가슴속에 묵직한 울림과 함께 새로운 깨달음을 얻게 되었습니다. '아, 저렇게 모든 부와 명예를 거머쥔 상위층 사람들도 결국 모든 것을 스스로 해결할 수 있는 완벽한 존재는 아니구나' 하는 점이었습니다. 우리는 흔히 값비싼 대저택에 살고 고급 외제차를 타는 이들을 보며 그들이 모든 면에서 결점 없는 삶을 살 것이라 막연히 환상에 사로잡히곤 합니다. 하지만 영화 속 박 사장 부부는 아이의 트라우마를 제어하지 못해 쩔쩔매고, 가사 노동의 공백을 스스로 메우지 못해 허둥대는 나약하고 빈틈 많은 인간일 뿐이었습니다. 그들의 화려한 삶 뒤편에는 누군가의 노동과 전문성이 절대적으로 뒷받침되어야만 유지되는 위태로운 성이 있었던 것입니다. 기택네 가족이 그들의 삶에 거부감 없이 자석처럼 착 달라붙어 어우러질 수 있었던 이유도 바로 이 때문이 아닐까 싶습니다. 상위층이 가진 물질적 풍요와 하위층이 가진 생존을 위한 절실한 능력이 묘하게 맞물리는 구조를 보며, 인간의 가치란 결코 통장 잔고의 액수로만 증명되는 것이 아님을 깊이 생각해 보게 되었습니다. 겉보기엔 기생하는 것처럼 보였지만, 어쩌면 그들은 서로의 결핍을 채워주던 기묘한 공생 관계였을지도 모른다는 씁쓸하고도 흥미로운 생각이 머릿속을 떠나지 않았습니다.
선과 악의 경계를 넘어, 우리 삶의 진정한 온도를 묻다
결과적으로 영화 <기생충>은 저에게 유쾌한 웃음과 팽팽한 긴장감, 그리고 엔딩 크레딧이 올라간 후에도 쉽게 자리를 뜨지 못하게 만드는 묵직한 여운을 동시에 선물해 준 최고의 마스터피스였습니다. 이 영화가 진정 위대한 이유는 관객들에게 선과 악의 이분법적인 잣대를 들이대며 누구 한 명을 손가락질하라고 강요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박 사장네 가족은 다소 거만하고 선을 넘는 것을 싫어할 뿐 본질적으로는 "부자인데 착하기까지 한" 사람들이었고, 기택네 가족 또한 사기 행각을 벌이긴 했지만 가정을 지키고 열심히 살아가고 싶었던 우리 주변의 평범하고 정 많은 이웃들이었습니다. 어릴 적 반지하의 공기를 기억하는 한 사람으로서, 그리고 오늘날 치열한 현대 사회를 살아가는 한 구성원으로서 이 영화는 저 스스로에게 "당신은 지금 어떤 냄새를 풍기며, 어떤 궤도 위를 걷고 있습니까?"라는 날카로운 질문을 던지는 것 같았습니다. 영화 속에서 반복해서 언급되는 그 슬픈 '반지하의 냄새'는 단순한 체취가 아니라, 쉽게 벗어날 수 없는 사회적 계층의 굴레를 상징하는 것 같아 마음이 아려오기도 했습니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절망만을 노래하는 영화는 아니라고 믿고 싶습니다. 오히려 우리가 눈 감아 버리려 했던 사회적 양극화의 단면을 유쾌하면서도 날카로운 메스로 보여줌으로써, 진정한 공생이란 무엇인가를 고민하게 만드니까요. 영화를 보고 난 지금, 저는 제 과거의 반지하 시절을 부끄러워하기보다는, 그 시절을 거쳐 지금에 이른 제 삶을 더욱 소중하게 보듬어 안고 싶어 졌습니다. 비록 박 사장네 대저택처럼 화려하진 않더라도, 내 힘으로 일구어 나가는 매일의 삶이 얼마나 가치 있는지를 새삼 깨닫게 됩니다. 여러분들께서도 이 영화를 보시며 단순히 계급 간의 갈등만을 보기보다는, 그 속에 투영된 인간에 대한 따뜻한 시선과 우리 삶의 진짜 온도를 한 번쯤 음미해 보시는 것은 어떨까 싶습니다. 긴 글 읽어주셔서 진심으로 감사드리며, 여러분의 삶에도 언제나 따스하고 밝은 햇살이 가득 스며들기를 마음 깊이 기원하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