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저는 다행히 사회초년생 시절 취업이 바로 이루어졌지만 사업을 위해 회사를 그만두었을 때와 영화 속 주인공이 처한 상황이 너무 겹쳐 보여서 영화에 더욱 몰두했었습니다. 재난 속에서 살아남으려는 사람의 모습이, 제가 사업 초기에 일이 없어 힘들게 버텼던 시간과 묘하게 겹쳐 보였습니다.
재난 생존 구조로 본 영화 엑시트의 설계
엑시트는 도심 한복판에서 정체불명의 유독 가스가 퍼지면서 시작됩니다. 취업에 번번이 실패한 청년 용남이 어머니 칠순 잔치 자리에서 갑작스러운 재난을 맞닥뜨리고, 대학 시절 클라이밍 동아리 경험을 살려 가족과 주변 사람들을 이끌고 옥상 위로 탈출을 시도하는 이야기입니다.
영화를 보면서 제가 주목했던 건 단순한 스토리가 아니라 생존 행동학(Survival Behavior)의 구조였습니다. 생존 행동학이란 위기 상황에서 인간이 어떤 판단 체계로 움직이는지를 분석하는 분야로, 실제 재난 대응 교육에도 활용됩니다. 이 관점에서 보면 영화 속 용남의 행동은 꽤 정교하게 설계되어 있습니다.
영화 속에서 용남은 옥상 문이 잠겨 있자 브래킷이나 끈을 활용해 외벽을 타고 오릅니다. 이때 그가 쓰는 기술이 바로 클라이밍에서 말하는 루트 파인딩(Route Finding)입니다. 루트 파인딩이란 암벽이나 건물 외벽처럼 정해진 길이 없는 곳에서 몸이 지나갈 수 있는 최적 경로를 실시간으로 탐색하는 능력을 말합니다. 스포츠클라이밍 교육 현장에서 초급자와 숙련자를 구분하는 핵심 기술 중 하나이기도 합니다.
또한 영화에서 방독면의 정화통(Filter Canister) 개념도 등장합니다. 정화통이란 방독면에 연결되어 유해 가스를 흡착·여과해 주는 핵심 부품으로, 사용 시간이 정해져 있어서 교체 시점을 놓치면 보호 기능이 사라집니다. 영화 속 상황처럼 정화통 하나가 남은 상태에서의 선택은 단순한 감정 서사가 아니라, 실제 재난 매뉴얼에서도 다루는 자원 배분(Resource Allocation) 문제입니다. 자원 배분이란 제한된 생존 자원을 어떻게 나눌 것인가를 결정하는 과정으로, 재난 상황에서는 개인의 생사와 직결됩니다.
낮은 층으로 내려가면 가스 농도가 더 짙어지고, 옥상에서 구조 신호를 보내는 것이 현실적인 생존 전략이라는 점에서 영화는 꽤 사실적인 재난 대응 흐름을 보여줍니다.
엑시트에서 주목할 만한 생존 요소를 정리하면 다음과 같습니다.
- 루트 파인딩: 클라이밍 경험을 활용한 즉흥 탈출 경로 선택
- 자원 배분: 방독면 정화통 하나를 두고 타인을 먼저 고려하는 선택
- 고지대 대피: 유독 가스의 확산 방향을 역이용한 상승 이동
- 구조 요청 전파: 방송국 카메라를 통해 위치 노출 및 구조 유도
버티는 사람이 결국 살아남는다는 것
제가 사업을 처음 시작했을 때를 돌이켜보면, 솔직히 처음 몇 달은 정말 아무 일도 없었습니다. 사회초년생 시절에는 취업이 바로 됐고 안정적이라고 느꼈는데, 스스로 무언가를 만들어야 하는 상황이 되자 완전히 다른 세계였습니다. 매일 아침 일어나도 해야 할 일보다 불안이 먼저 쌓였습니다.
그때 영화 속 용남이 처한 상황이 지금도 자주 떠오릅니다. 그는 취업에 수차례 실패한 인물입니다. 동아리에서는 인정받았고 클라이밍 실력도 있었지만, 그게 사회에서의 성공으로 곧바로 이어지지 않았습니다. 많은 분들이 이 부분을 단순한 설정으로 볼 수 있지만, 제 경험상 이건 꽤 현실적인 묘사입니다. 특정 능력이 있다고 해서 그 능력이 시장에서 즉시 인정받는 건 아니니까요.
국내 청년 취업률은 점점 낮아지고 있습니다. 용남의 이야기가 영화 속 픽션으로만 느껴지지 않는 이유가 여기에 있습니다.
제가 직접 겪어보니, 아무것도 안 하고 기다리는 것과 조금씩 계속 움직이는 것 사이의 차이는 시간이 지날수록 엄청나게 벌어집니다. 영화 속 용남도 옥상 문이 잠겨 있어도, 헬기가 한 번 자신들을 지나쳐도, 포기하지 않고 다음 경로를 찾습니다. 이것이 단순한 용기가 아니라 생존 심리학(Survival Psychology)에서 말하는 '지속적 행동 유지' 패턴과 일치합니다. 생존 심리학이란 극한의 상황에서 인간이 어떻게 정신적 붕괴를 막고 행동을 이어나가는지를 연구하는 분야입니다.
결국 이 영화가 코미디의 형식을 빌리면서도 오래 기억에 남는 이유는, 웃음 뒤에 붙어 있는 메시지가 꽤 무겁기 때문이라고 생각합니다. 대단한 능력이 아니라 포기하지 않는 태도가 사람을 살린다는 것, 그리고 그 태도는 평소에 쌓아온 작은 경험들에서 나온다는 것. 제가 버텼던 그 시간이 헛되지 않았다는 걸 나중에야 알았듯이, 용남도 철봉을 매일 잡았던 그 시간들이 결국 자신을 살립니다.
엑시트는 한 번 웃고 끝나는 영화가 아닙니다. 지금 막막한 시기를 보내고 있는 분이라면, 주인공의 행동보다 그가 포기하지 않는 방식을 더 유심히 보시길 권합니다. 그리고 보고 난 후 '나는 지금 어디쯤 올라가고 있나'를 한 번쯤 생각해 보시면, 이 영화가 단순한 오락 그 이상으로 다가올 겁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