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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속 지옥도가 내 삶의 문턱까지 찾아왔던 순간
우리는 흔히 영화를 보며 "아이구, 저건 영화니까 가능한 이야기지"라며 혀를 차곤 합니다. 하지만 김성수 감독의 영화 <아수라>를 보는 동안, 저는 스크린 속 핏빛 지옥도가 제 과거의 어떤 한 페이지와 지독하게 닮아있다는 생각을 지울 수 없었습니다. 극 중 정우성 배우가 연기한 한도경 형사는 말 그대로 '생계형 악인'입니다. 아픈 아내의 병원비를 대기 위해, 그리고 어떻게든 이 척박한 세상에서 살아남기 위해 황정민 배우(박성배 시장 역)의 온갖 더러운 뒷수습을 도맡아 하죠. 정의와 생존이라는 거대한 양면성 앞에서 피눈물을 흘리며 고뇌하는 그의 모습을 보며, 저는 몇 년 전 제 직장 생활의 가장 어두웠던 기억이 떠올랐습니다.
당시 제가 몸담았던 직장의 상사는 그야말로 작은 사회의 '박성배 시장' 같은 존재였습니다. 자신의 이익과 성과를 위해서라면 부하 직원들의 공을 가로채는 것은 물론이고, 거래처를 상대로 교묘한 갑질과 반칙을 일삼는 사람이었죠. 처음 그 현장을 목격했을 때 제 마음속에서는 "이건 정말 아니지 않나"라는 정의감이 불타올랐습니다. 당장이라도 사표를 던지고 이 부조리한 곳을 탈출하고 싶었습니다.
하지만 현실은 영화보다 더 냉혹했습니다. 매달 꼬박꼬박 빠져나가는 대출 이자, 부모님의 약값, 그리고 당장 내일의 생활비를 생각하니 제 손발이 묶이는 기분이 들더군요. 결국 저 역시 한도경 형사처럼, 속으로는 피눈물을 흘리면서도 상사의 부당한 지시를 묵묵히 따르고 말았습니다. "나도 먹고살아야 하니까 어쩔 수 없다"는 비겁한 자기 합리화의 방패 뒤로 숨어버린 것이죠. 낮에는 부당한 업무를 처리하고, 밤에는 죄책감에 시름시름 앓던 그 시절의 제 모습이 영화 속 정우성 배우의 처절한 눈빛과 겹쳐 보여 가슴이 먹먹했습니다. 생존이라는 절대적인 명제 앞에서 인간이 어디까지 나약해질 수 있는지, 저는 영화 속 허구가 아닌 제 삶의 진짜 경험을 통해 뼈저리게 느껴보았기에 이 영화가 남들보다 배로 아프게 다가왔던 것 같습니다.
절대 악과 차악이 벌이는 아수라장에서 인간의 본질을 묻다
영화 <아수라>는 제목 그대로 눈을 씻고 찾아봐도 '착한 사람'이 단 한 명도 나오지 않는 기이하고도 매력적인 영화입니다. 보통의 범죄 스릴러 영화라면 관객이 감정을 이입하고 응원할 만한 정의로운 주인공이 한 명쯤은 있기 마련인데, 이 작품은 단호하게 그 기대를 배신합니다. 극 중 박성배 시장 역할을 맡은 황정민 배우의 연기는 정말이지 소름이 돋다 못해 등골이 오싹해질 정도였습니다. 재개발 이권을 쥐고 흔들며 깡패를 동원하고, 자신의 앞길을 막는 자들은 눈 하나 깜짝하지 않고 짓밟아버리는 그 압도적인 카리스마는 대한민국 영화사에서 손에 꼽힐 만한 절대 악의 모습이었습니다.
이러한 절대 악 밑에서 푼돈을 받으며 악행을 대행하는 정우성 배우의 연기는, 관객으로 하여금 묘한 딜레마에 빠지게 만듭니다. 분명 그도 나쁜 짓을 저지르는 악인이 맞는데, 가족을 위해 지옥 같은 현실을 견뎌내는 모습을 보면 나도 모르게 '오죽하면 저럴까' 하는 동정심이 고개를 들기 때문입니다. 영화는 한순간도 긴장감을 놓을 수 없게 몰아치면서 우리에게 묵직한 질문을 던집니다. 과연 "돈과 생존 앞에서 인간의 정의감은 얼마나 유효한가?"라는 질문 말입니다.
저는 이 영화를 보면서 우리 사회의 이면을 깊게 들여다보게 되었습니다. 뉴스를 장식하는 거대 권력의 비리(박성배 시장)와, 그 권력의 찌꺼기를 먹으며 기생하는 소시민적 악인들(한도경 형사)의 모습은 결코 영화 속에만 존재하는 것이 아닙니다. 어쩌면 우리 모두는 각자의 삶 속에서 조금씩 타협하고, 조금씩 눈을 감으며 작은 아수라장을 만들어가고 있는지도 모릅니다. 선과 악의 경계가 완전히 무너져 내린 그 핏빛 가득한 스크린을 바라보며, 저는 인간의 탐욕이 만들어낸 시스템이 얼마나 괴물 같은지, 그리고 그 속에서 개인의 도덕성이 얼마나 쉽게 파멸할 수 있는지 깊이 사유하게 되었습니다.
핏빛 지옥도가 남긴 지독한 여운, 그리고 우리가 걸어가야 할 길
영화의 후반부, 모든 인물이 한자리에 모여 서로를 물어뜯는 아수라장의 정점은 그야말로 숨을 쉴 수 없을 만큼 압도적이었습니다. 스크린 가득 퍼지는 어둠과 피의 향연 속에서, 저는 이 영화가 단순한 오락 영화를 넘어 인간의 바닥을 보여주는 하나의 거대한 우화라는 결론을 내렸습니다. 김성수 감독은 관객에게 어설픈 위로나 해피엔딩을 선물하지 않습니다. 대신 지옥의 가장 깊은 곳까지 관객을 끌고 내려가 "너라면 이 상황에서 어떤 선택을 하겠느냐"라고 집요하게 몰아붙입니다. 영화가 끝난 후 극장 문을 나설 때, 찌는 듯한 바깥공기조차도 서늘하게 느껴졌던 그 지독한 여운은 아직도 제 기억에 생생히 남아있습니다.
결국 영화 <아수라>가 우리에게 남긴 가장 큰 가치는, 역설적이게도 '빛'에 대한 갈망이라고 생각합니다. 온통 암흑으로 가득 찬 세상을 보았기에, 우리가 붙잡아야 할 최소한의 인간성과 정의가 얼마나 소중한지 반어적으로 깨닫게 되는 것이죠. 한도경 형사처럼 돈과 생존이라는 현실적인 벽에 부딪혀 고뇌할지언정, 박성배 시장처럼 괴물이 되지는 말아야겠다는 다짐을 하게 만듭니다. 아무리 세상이 진흙탕 같고 살기 팍팍할지라도, 내가 서 있는 자리에서 타인에게 상처 주지 않고 정직하게 살아가려는 작은 노력이 결국 이 세상을 아수라장이 아닌 '사람 사는 세상'으로 만드는 유일한 방법이 아닐까 싶습니다.
배우들의 신들린 연기력과 숨 막히는 연출력, 그리고 인간의 본질을 꿰뚫는 묵직한 메시지까지 삼박자를 모두 갖춘 이 웰메이드 영화를 아직 보지 못하신 분들이 있다면 꼭 한 번 관람해 보시기를 정중히 권해드립니다. 보고 나면 가슴 한구석이 뻐근해지겠지만, 우리가 왜 인간답게 살아야 하는지 그 해답을 찾을 수 있는 값진 시간이 될 것이라 확신합니다. 긴 글 읽어주셔서 진심으로 감사드리며, 여러분의 삶은 아수라장이 아닌 늘 평안하고 따뜻한 빛으로 가득하시기를 소망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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