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도치처럼 머리 밀 뻔했던 내 인생의 '민란'의 순간
솔직히 고백하자면, 제가 영화 <군도>를 보게 된 건 순전히 주말 오후의 지독한 지루함 때문이었습니다. 넷플릭스를 이리저리 돌리다가 하정우 배우가 시원하게 머리를 밀고 양손에 칼을 든 포스터를 봤죠. 그 순간, 제 머릿속을 스치고 지나간 흑역사가 하나 있었습니다. 때는 바야흐로 몇 년 전, 정말 하는 일마다 뒤지게 안 풀리던 암흑기였습니다. 다니던 직장에서는 상사에게 탈탈 털리고, 주식은 파란불을 켜다 못해 얼어붙었으며, 연애 전선은 가뭄이 든 조선 후기 삼남지방처럼 바짝 말라비틀어졌던 시절이었죠. 그때 제 심정이 딱 영화 속 '돌무치(하정우)' 같았습니다. 세상이 나를 억까(억지 까기)하는 것 같고, 당장이라도 쇠백정처럼 고기 써는 칼이라도 들고 세상에 대고 "왁!" 하고 소리치고 싶었거든요. 그때 너무 답답한 마음에 미용실에 가서 "원장님, 저 그냥 삭발해 주세요"라고 충동적으로 외쳤던 기억이 납니다. 다행히 이성을 붙잡은 미용실 원장님이 "손님, 두상이 에이리언 같아서 삭발하면 후회해요"라며 이발기를 거두어 주셨기에 망정이지, 안 그랬으면 저도 지리산 추설의 '도치'처럼 대머리로 세상을 활보할 뻔했습니다. 그렇게 억울함과 분노가 가득했던 제 개인적인 암흑기를 통과한 직후에 이 영화를 봐서 그런지, 영화 시작부터 몰입감이 장난이 아니었습니다. 특히 돌무치가 억울하게 가족을 잃고 쇠백정에서 도치라는 거친 의적으로 거듭나는 과정을 보면서, 카타르시스가 느껴졌습니다. 나를 괴롭히던 세상의 모든 부조리함과 대기업 회장님 뺨치는 악덕 상사의 얼굴이 영화 속 탐관오리들의 얼굴에 오버랩되더군요. 영화 속에서 지리산 추설 멤버들이 굶주린 백성들을 위해 관아를 털고 쌀을 나누어 줄 때, 저는 방구석 구석에 박혀 있던 과자 봉지를 뜯으며 대리 만족을 느꼈습니다. "그래, 세상은 원래 불공평하지만, 저렇게 한 판 뒤집어엎는 맛이라도 있어야 살지!" 하면서 말이죠. 결국 이 영화는 저에게 단순한 킬링타임용 무비가 아니라, 팍팍한 현실에 치여 살던 제 영혼에 던져진 시원한 사이다 한 사발 같은 경험이었습니다.
조윤의 미모에 홀리고, 백성의 외침에 울다
영화 <군도>를 보면서 가장 먼저 든 생각은 "세상에, 강동원은 왜 악역인데 이렇게 눈이 부신가"였습니다. 이거 저만 그런 거 아니죠? 영화를 보신 분들이라면 다들 공감하실 겁니다. 조선 최고의 무관이자 극악무도한 서자 '조윤' 역을 맡은 강동원 배우가 칼을 휘두를 때마다, 이건 액션 영화가 아니라 무슨 샴푸 광고나 하이틴 로맨스 영화를 보는 것 같았습니다. 긴 머리를 휘날리며 대나무 숲에서 칼춤을 출 때는 저도 모르게 "나쁜 놈인데… 그냥 이기게 해 주면 안 되나?" 하는 도덕적 딜레마에 빠지기도 했습니다. 조윤이 악행을 저지를 때마다 마음속으로 '저 녀석은 얼굴이 죄다'라며 애써 변명해 주는 제 자신을 보며, 역시 시각적인 아름다움은 이성을 마비시킨다는 깊은 철학적 깨달음(?)을 얻었습니다. 하지만 외모지상주의적 감탄을 잠시 내려놓고 영화의 알맹이를 들여다보면, 꽤 묵직한 메시지가 들어있습니다. 영화는 끊임없이 묻습니다. "타고난 신분이 무엇이길래 사람을 이토록 짓밟는가?" 조윤 역시 서자라는 신분적 콤플렉스 때문에 괴물이 된 인물이고, 도치와 백성들은 노비와 천민이라는 굴레 때문에 목숨마저 위협받는 처지였죠. 제가 주목한 점은 바로 이 '결핍의 충돌'이었습니다. 똑같이 세상으로부터 상처받은 이들이 한쪽은 더 지독한 압박으로, 다른 한쪽은 연대와 저항으로 맞서는 모습이 인상 깊었습니다. 특히 영화의 명대사인 "뭉치면 백성이요, 흩어지면 도적인 것을!"이라는 대사를 들을 때는 온몸에 소름이 돋았습니다. 결국 역사를 움직이고 세상을 바꾸는 건 대단한 영웅 한 명이 아니라, 굶주림과 억압 참다못해 쇠창과 낫을 들고일어난 평범한 '쪽수'들의 힘이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요즘 세상도 크게 다르지 않다고 봅니다. 법과 제도가 아무리 공정하다고 말해도 여전히 '금수저', '흙수저' 논란이 있고, 평범한 소시민들이 살아가기엔 팍팍한 구석이 많으니까요. 그런 의미에서 <군도>는 조선 시대를 배경으로 하고 있지만, 오늘날을 살아가는 우리들에게도 "너희는 지금 너희의 권리를 위해 연대하고 있느냐"라고 묵직한 돌직구를 던지는 영화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망할 놈의 세상, 시원하게 한 판 웃고 다시 달리는 거지!
결론적으로 <군도: 민란의 시대>는 화려한 액션이라는 겉포장지 속에 '인간 존엄성'이라는 꽤나 묵직한 알맹이를 유쾌하게 담아낸 수작입니다. 영화의 마지막 장면, 광활한 들판을 달리는 군도의 무리들을 보면서 제 가슴도 심장박동수 180bpm을 찍으며 요동쳤습니다. 윤종빈 감독 특유의 웨스턴 무비 스타일의 음악과 연출은 자칫 무거워질 수 있는 민란이라는 주제를 한 편의 신나는 축제처럼 즐기게 만들어 주었습니다. 신나게 때려 부수고, 시원하게 정의를 구현하는 모습을 보며 그동안 쌓였던 스트레스가 안동 찜닭 살코기 찢기듯 부드럽게 찢겨 나가는 기분이었습니다. 우리는 매일 아침 지옥철에 몸을 싣고, 모니터 화면과 씨름하며, 통장 잔고를 보며 한숨을 쉽니다. 어쩌면 우리 모두는 각자의 일상이라는 거대한 관아 속에서 탐관오리 같은 스트레스에 시달리는 조선의 백성들일지도 모릅니다. 하지만 영화 속 군도 무리들이 지리산 구석에서 똘똘 뭉쳐 내일을 도모했던 것처럼, 우리에게도 일상의 숨구멍은 필요합니다. 저에게는 이 영화를 보고 글을 쓰는 지금 이 순간이 바로 지리산 추설의 아지트 같은 공간입니다. 애드센스 승인을 기다리며 이 글을 읽어주시는 모든 분들께도 말씀드리고 싶습니다. 세상이 우리를 억누르고, 구글 봇이 내 글을 몰라봐서 낙방의 쓴잔을 마시게 할지라도 좌절하지 맙시다. 흩어지면 일개 블로거지만, 우리가 이렇게 좋은 콘텐츠로 소통하고 뭉치면 세상을 바꾸는 멋진 독자가 되는 것 아니겠습니까? 오늘 밤, 현실이 답답하다면 맥주 한 캔 따서 <군도>의 화려한 칼춤 속에 스트레스를 던져버리시길 바랍니다. 망할 놈의 세상, 시원하게 한 판 웃고 나면 또 내일을 살아갈 힘이 생기는 법이니까요! 도치의 쌍칼처럼 날카롭고 시원한 하루 보내시길 바라며 글을 마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