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검사 한 명이 하루에 처리해야 하는 사건 수가 평균 30건이라는 사실, 영화 속 대사로 처음 들었을 때 저는 반신반의했습니다. 그런데 실제 현직 검사들의 인터뷰를 찾아보니 과장이 아니었습니다. 화려한 권력의 이면에 쌓여가는 서류 더미. 영화 〈더 킹〉은 그 간극에서 한 사람이 어떻게 타락해 가는지를 2시간 넘게 밀도 있게 보여줍니다.
1980년대 대한민국, 검사라는 직업의 무게
영화의 배경은 군사 정권이 막을 내리고 민주화 열기가 들끓던 1980~90년대입니다. 이 시기 사법고시는 말 그대로 신분 상승의 유일한 사다리였습니다. 여기서 사법고시란 판사·검사·변호사 자격을 부여하는 국가 시험으로, 합격률이 수 퍼센트에 불과해 수년간의 수험 생활을 감내해야 하는 극한의 관문이었습니다.
태수(조인성)가 학교 짱에서 공부벌레로 돌변한 계기는 단순한 성공 욕심이 아니었습니다. 평생 누구에게도 굽히지 않던 아버지가 검사 앞에 무릎을 꿇는 장면 하나가 그의 세계관을 통째로 뒤집어 놓습니다. 저도 그 장면에서 이상하게 가슴이 덜컥 내려앉았습니다. 권력이란 주먹이나 돈보다 훨씬 깊은 곳에서 사람을 무너뜨린다는 걸, 아직 10대인 태수도 본능적으로 느낀 거겠죠.
당시 학력고사 체제에서는 내신이 반영되지 않고 단 한 번의 시험 성적이 진학을 결정했습니다. 학력고사란 1994년 수능이 도입되기 이전까지 대입을 좌우하던 전국 단위 필기시험을 가리킵니다. 고3 때 처음 공부를 시작한 태수가 정교 1등까지 치고 올라가는 장면은 물론 영화적 과장이 있지만, 내신 없이 시험 하나로 승부하던 그 시대의 구조가 그 설정을 그나마 납득 가능하게 만들어줍니다.
사법연수원 시절 등장하는 마담뚜 장면도 그냥 지나치기엔 아깝습니다. 사법연수원이란 사법시험 합격자들이 판사·검사·변호사로 배치되기 전 실무 교육을 받는 기관으로, 이 시기 성적이 진로를 가르는 결정적 분기점이었습니다. 검사직이 판사 못지않게 선망받던 이유는 '살아있는 권력' 그 자체였기 때문입니다. 수사 개시 권한과 기소 재량권을 동시에 쥔 검사의 위상은 지금과 비교해도 훨씬 절대적이었습니다.
한강식 라인, 그리고 조직에서 버려지는 방식
영화 중반부의 핵심은 기득권 카르텔(cartel)의 작동 방식입니다. 카르텔이란 원래 경제 용어로 동일한 이해관계를 가진 집단이 담합해 외부 경쟁을 차단하는 구조를 의미하는데, 영화 속 검찰·언론·조폭의 결탁이 딱 이 구조입니다. 한강식(정우성)이 공안부 수사로 전국 조폭을 일망타진하면서 쌓은 권력을 바탕으로, 이후 언론과 정치권까지 연결망을 뻗어나가는 과정이 섬뜩하리만큼 자연스럽게 그려집니다.
저는 이 부분에서 영화를 보는 게 아니라 제 과거를 들여다보는 기분이었습니다. 몇 년 전 직장에서 저는 직속 상사에게 모든 것을 쏟아부었습니다. "우리는 한 배"라는 말을 믿었고, 궂은일도 앞장섰습니다. 그런데 조직에 위기가 닥치자 상사는 저를 방패막이로 내세웠고, 저는 한 번의 통보도 없이 변두리 부서로 밀려났습니다. 태수가 좌천 통보를 받고 전화를 붙잡고 징징대는 장면에서 저도 모르게 손이 땀에 젖었습니다.
토사구팽(兎死狗烹)이라는 표현이 이 영화만큼 잘 맞는 경우도 드뭅니다. 토사구팽이란 필요할 때는 쓰고, 쓸모가 없어지면 가차 없이 버린다는 뜻의 고사성어입니다. 태수가 한강식에게 그런 존재였듯, 저 역시 조직에서 그런 역할을 했던 거겠죠.
영화가 보여주는 배신의 구조를 정리하면 다음과 같습니다.
- 핵심 실세는 '실무 담당자'를 방패로 쓰고, 위기가 오면 먼저 희생시킨다
- 기회주의적 중간 관리자는 실세가 유리할 때 충성하고, 불리해지면 바로 선을 긋는다
- 실무자는 시스템의 구조를 인식하지 못한 채 '관계'를 믿다가 뒤통수를 맞는다
이 구조는 검찰이라는 특수한 세계만의 이야기가 아닙니다. 직장인 4명 중 1명이 상사나 조직으로부터 부당한 처우를 경험했다고 응답했다는 조사 결과도 있습니다(출처: 한국노동연구원). 냉혹한 위계 구조는 어디에나 존재한다는 뜻입니다.
영화의 마지막 선택, 그리고 현실과의 거리
태수가 결국 정치인을 선택하는 결말에 대해 "통쾌하다"고 보는 분들도 있는데, 저는 솔직히 그 부분에서 오히려 씁쓸함이 더 컸습니다. 권력의 피해자가 다시 권력의 게임 안으로 뛰어드는 것이 과연 청산인가, 아니면 또 다른 순환의 시작인가 하는 의문이 남기 때문입니다.
엔딩에서 태수가 카메라를 정면으로 응시하며 "당신이 결정하는 것"이라고 내뱉는 장치는 감독의 의도가 느껴지긴 합니다. 관객 참여형 열린 결말, 이른바 오픈 엔딩(open ending) 기법입니다. 오픈 엔딩이란 서사를 단정 짓지 않고 해석의 여지를 관객에게 넘기는 연출 방식입니다. 다만 제가 직접 보니 그 의도가 조금 과하게 표면화된 감이 있었습니다. 좋은 영화일수록 메시지를 슬쩍 숨겨두는 법인데, 여기서는 감독이 너무 직접적으로 말을 걸어오는 느낌이 들었거든요.
반면 한강식 캐릭터의 후반부 처리는 꽤 인상적이었습니다. 나르시시스틱 퍼스낼리티(narcissistic personality), 즉 자기애적 성격이 강한 사람이 자신의 패배를 인정하지 못하고 끝까지 현실을 왜곡하는 모습을 정우성이 과하지 않게 표현했습니다. 조직 내 고위직에서 나르시시즘적 성향을 가진 리더가 전체 조직에 미치는 부정적 영향은 여러 경영학 연구에서도 일관되게 확인되고 있습니다(출처: 한국경영학회).
〈더 킹〉을 아직 안 보신 분들께는 그냥 오락 영화로 접근하셔도 충분히 재밌습니다. 다만 직장에서 한 번이라도 "아, 내가 이용당하고 있구나" 싶은 순간을 겪어보신 분이라면, 이 영화가 단순한 범죄 드라마가 아니라 꽤 직접적인 거울처럼 느껴지실 겁니다. 저에게는 분명 그랬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