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나도 한때는 '도둑들'의 마카오 박을 꿈꿨다
솔직히 말해서 이 영화를 처음 극장에서 봤을 때가 아직도 생생합니다. 친구 놈들이랑 오랜만에 동네 영화관에 모여서 "야, 전지현 나온대", "김윤석 나오면 무조건 평타 이상이지" 하면서 팝콘 큰 거 하나 들고 들어갔었죠. 영화가 시작되고 홍콩, 마카오의 화려한 야경이 스크린을 가득 채우는데, 와... 진짜 숨이 턱 막히더라고요. 특히 예니콜(전지현 분)이 줄 하나에 의지해서 빌딩 벽을 타는 타잔 같은 액션을 선보일 때는 저도 모르게 마시던 콜라를 뿜을 뻔했습니다. 너무 멋있고 짜릿해서요! 영화가 끝나고 극장 문을 나서는데, 왠지 모르게 제 걸음걸이가 달라져 있었습니다. 괜히 주머니에 손 딱 찔러 넣고, 눈빛은 레이저라도 쏠 것처럼 슬쩍 흐리면서 내가 무슨 마카오 박(김윤석 분)이라도 된 양 어깨에 잔뜩 힘을 주고 걸었죠. 같이 본 친구 놈도 제 눈빛을 읽었는지 "야, 너 지금 눈에 힘 왜 이렇게 주냐? 뭐 하나 훔치러 가냐?"라며 배를 잡고 비웃더군요. 그날 밤 집에 와서가 진짜 코미디였습니다. 영화의 여운이 너무 길게 남아서, 괜히 침대 위에 올라가 방바닥으로 다이빙하듯 와이어 액션 흉내를 내다가 침대 매트리스 스프링을 주저앉힐 뻔했으니까요. 엄마한테 "밤중에 뭔 난리냐"며 등짝 스매싱을 세게 맞고 나서야 마카오 박의 망상에서 겨우 깨어났습니다. 그때 맞은 등짝이 얼마나 아팠던지, 역시 평범한 시민으로 사는 게 가장 안전하다는 걸 뼈저리게 깨달은 웃픈 기억이 있습니다. 지금 생각해도 참 철없고 유쾌했던, <도둑들> 때문에 잠 못 이루던 그 시절의 철부지 제 모습이 떠올라 혼자 피식 웃게 되네요.
세상에 완벽한 팀워크란 없다, 하지만 그래서 매력적이다
영화 <도둑들>을 보면서 가장 흥미로웠던 점은, 이 영화에 나오는 인물 중 그 누구도 서로를 완벽하게 믿지 않는다는 사실이었습니다. 보통 할리우드 케이퍼 무비(범죄 영화)를 보면 "우리는 하나! 의리로 똘똘 뭉쳐 가자!"라며 끈끈한 동료애를 과시하곤 하잖아요? 그런데 이 영화는 전혀 다릅니다. 한국과 홍콩의 내로라하는 도둑 10명이 모였는데, 겉으로는 "헤이, 브라더~" 하면서 웃고 있지만 속으로는 다들 '이 인간 통수칠 타이밍이 언제지?' 하고 주판알을 튕기고 있습니다. 저는 이런 인간의 속물적인 본성을 아주 유쾌하고 노골적으로 보여준 최동훈 감독의 연출력이 정말 천재적이라고 생각합니다. 만약 이들이 진짜 착하고 정의로운 도둑들이었다면 오히려 영화가 지루했을지도 모릅니다. "돈 앞에 장사 없다"는 인간의 본능을 아주 날것 그대로 보여주니까 보는 내내 긴장감이 팽팽하더라고요. 배신에 배신이 꼬리를 물고, "팀워크는 개뿔, 내 밥그릇은 내가 챙긴다"는 마인드로 똘똘 뭉친 이들의 모습이 오히려 현실적으로 다가왔습니다. 특히 좋았던 건 캐릭터들의 말맛이었습니다. "도둑질은 훔치는 게 아니라 속이는 거다", "치마가 짧은 건 다리가 길어서다" 같은 대사들은 지금 들어도 감탄이 나옵니다. 배우들의 티키타카를 보고 있으면 130분이 넘는 러닝타임이 어떻게 지나가는지 모를 정도니까요. 다들 하나같이 결함이 있고 이기적인 인간들이지만, 그 지독한 인간미(?) 때문에 미워할 수가 없다는 게 이 영화의 진짜 마법인 것 같습니다. 결국 인생이라는 것도 거창한 의리보다는, 이렇게 서로 적당히 속고 속이면서 굴러가는 게 아닐까 하는 엉뚱한 철학적 생각마저 들게 만드는 묘한 매력이 있는 작품입니다.
인생이라는 거대한 판에서 우리 모두는 무언가를 훔치려 한다
결과적으로 영화 <도둑들>은 단순한 오락 영화를 넘어, 제 인생 영화 리스트에서 심심할 때마다 꺼내 보는 '사골국' 같은 존재가 되었습니다. 개봉한 지 꽤 오랜 시간이 흘렀음에도 불구하고, 케이블 TV나 OTT에서 재방송을 해줄 때마다 저도 모르게 리모컨을 멈추고 끝까지 보게 되더라고요. 이미 범인이 누구고, 다이아몬드가 어디로 가는지 결말을 다 알고 있으면서도 볼 때마다 새로운 재미를 발견하게 되는 신기한 영화입니다. 생각해보면 우리 인생도 이 도둑들과 크게 다르지 않은 것 같습니다. 영화 속 도둑들은 '태양의 눈물'이라는 거대한 다이아몬드를 훔치기 위해 목숨을 걸지만, 우리네 평범한 사람들도 매일 아침 전쟁 같은 출근길에 오르며 각자의 '다이아몬드'를 훔치려 애쓰고 있으니까요. 누군가에게는 그것이 '성공'일 수도 있고, 누군가에게는 '안정된 미래'나 '사랑하는 사람의 마음'일 수도 있겠죠. 비록 도둑들처럼 세련된 와이어 액션은 못 하지만, 우리 모두 매일 삶의 벽을 타며 치열하게 버텨내고 있다는 점에서 묘한 동질감마저 느낍니다. 혹시 요즘 일상이 너무 무료하거나, 가슴 뻥 뚫리는 카타르시스가 필요하신 분들이 있다면 오늘 밤 <도둑들>을 다시 한번 정주행해 보시는 건 어떨까요? 화려한 볼거리와 빵빵 터지는 유머, 그리고 배우들의 미친 연기 합을 즐기다 보면 쌓였던 스트레스가 싹 날아가 버릴 테니까요. 단, 저처럼 영화 보고 나서 침대 위에서 와이어 액션 흉내 내다가 침대 망가뜨리는 불상사는 절대 없으시길 바랍니다! 여러분의 소중한 등짝은 소중하니까요. 이상으로 제 멋대로 채워본 유쾌한 <도둑들> 리뷰를 마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