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영화 <콜>을 마주하며 떠올린 나의 경험과 기억
우리는 살아가면서 누구나 한 번쯤 ‘만약 그때 다른 선택을 했더라면 어땠을까?’ 하는 실속 없는 상상을 하곤 합니다. 저 역시 평소에 과거의 사소한 기억들을 들추어보며 혼자만의 공상에 빠지는 일이 잦은 편입니다. 영화 콜을 처음 접했던 그날도 사실 특별한 계기가 있었던 것은 아니었습니다. 그저 유난히도 가구들의 그림자가 길게 늘어지던 쓸쓸한 주어지는 저녁이었고, 무심코 넷플릭스를 뒤적이다가 강렬한 포스터에 이끌려 재생 버튼을 눌렀을 뿐이었습니다. 낡은 전화기 한 대를 사이에 두고 서로 다른 시간대에 살고 있는 두 여자가 연결된다는 설정은, 제 개인적인 추억 한 조각을 강렬하게 자극했습니다. 생각해 보면 제 학창 시절에도 지금은 흔적조차 찾기 힘든 공중전화나 투박한 가정용 유선 전화기가 삶의 중요한 소통 창구였습니다. 스마트폰처럼 발신인이 누구인지 미리 알려주는 친절한 액정 화면도 없던 시절이었지요. 그 시절의 전화벨 소리는 언제나 묘한 긴장감과 설렘을 동시에 선사하곤 했습니다. 수화기 너머로 들려오는 상대방의 목숨 같은 숨소리에 집중하고, 혹시라도 중간에 끊길까 봐 전화선을 손가락으로 배배 꼬며 이야기를 나누던 그 시절의 아날로그적인 감성이 영화 초반부를 보며 스멀스멀 피어올랐습니다. 특히 영화 속 주인공인 서연이 과거의 오영숙과 처음 통화를 트며 기묘한 유대감을 쌓아가는 과정은, 제가 어린 시절 시골 할머니 댁의 깊은 다락방에서 먼지 쌓인 옛날 물건들을 발견했을 때 느꼈던 기분과 무척이나 닮아 있었습니다. 존재 자체를 잊고 지냈던 과거의 잔재가 현재의 나에게 말을 걸어오는 듯한 기분은 묘한 소름과 함께 강한 호기심을 유발하더군요. 물론 영화는 제 감성적인 추억 여행을 비웃기라도 하듯, 순식간에 숨 막히는 스릴러의 심연으로 저를 끌고 내려갔습니다. 친근하고 다정했던 전화벨 소리가 어느 순간 소름 끼치는 경고음으로 변해갈 때, 저 역시 방 안의 불을 모두 켜지 않고서는 견딜 수 없을 만큼 강렬한 몰입감을 경험했습니다. 평범한 일상의 도구가 가장 공포스러운 매개체로 변모하는 과정을 지켜보며, 한동안 집의 수화기를 쳐다보는 것조차 꺼려질 정도로 깊은 여운이 남았던 생생한 경험이었습니다.
시공간의 뒤틀림이 주는 서스펜스, 영화에 대한 나의 생각
영화 콜이 지닌 가장 큰 미덕은 단순히 과거를 바꾼다는 흔한 타임슬립의 문법을 따르지 않고, 그것이 초래하는 '나비효과'의 잔혹함을 극한까지 밀어붙였다는 점에 있다고 생각합니다. 흔히 타임슬립을 다룬 대중 매체들은 과거를 바로잡아 현재를 행복하게 만드는 해피엔딩을 지향하곤 합니다. 하지만 이 작품은 인간의 이기심과 사소한 호의가 결합했을 때, 얼마나 끔찍한 괴물을 탄생시킬 수 있는지를 서늘하게 증명해 냅니다. 과거의 영숙이 서연의 아버지를 살려주는 대가로 서연의 미래가 잠시 풍요로워지는 순간까지는 저 역시 안도하며 미소를 지었습니다. 하지만 그것은 거대한 파멸을 앞둔 폭풍전야의 고요에 불과했습니다. 특히 배우 전종서 님이 연기한 '오영숙'이라는 캐릭터는 한국 영화사에서 손에 꼽을 만큼 독보적이고 강렬한 여성 빌런의 탄생을 보여주었다고 생각합니다. 서연의 사소한 말 한마디와 미래의 정보들이 영숙이라는 시한폭탄 같은 존재의 도화선에 불을 붙이는 과정을 보며, 소름이 돋다 못해 오한이 일 정도였습니다. 전화 한 통으로 인해 실시간으로 서연이 살고 있는 집의 인테리어가 바뀌고, 주변 인물들의 존재 여부가 지워졌다 살아나는 시각적 연출은 연출자의 탁월한 감각을 엿볼 수 있는 대목이었습니다. 이는 우리가 무심히 던진 한 마디, 혹은 사소한 선택들이 타인의 인생을 얼마나 송두리째 뒤흔들 수 있는지를 은유적으로 보여주는 훌륭한 장치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더불어 이 영화는 '과거는 고정되어 있고 현재는 유동적이다'라는 일반적인 상식을 정면으로 뒤집어엎습니다. 오히려 과거를 쥐고 흔드는 영숙이 절대적인 권력을 쥐고, 현재를 살아가는 서연은 철저하게 약자의 위치에서 발버둥 칠 수밖에 없는 구조가 팽팽한 긴장감을 유지하는 원동력이 됩니다. 인간이 신의 영역인 '시간'을 통제하려 들 때 치러야 하는 대가가 얼마나 처참한지, 그리고 과거에 발목 잡힌 인간이 얼마나 무력해질 수 있는지를 날카롭게 파헤친 수작이라는 것이 이 영화에 대한 저의 솔직한 견해입니다.
우리 삶의 '선택'을 돌아보며, 리뷰를 마무리하며
영화의 러닝타임이 모두 끝나고 검은 엔딩 크레딧이 올라가는 순간에도, 저는 한동안 소파에서 쉽게 일어설 수가 없었습니다. 마지막 반전이 선사한 뒤통수의 얼얼함도 컸지만, 영화가 던진 묵직한 메시지가 가슴 한구석을 계속해서 찌르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매일 수많은 선택의 기로에 서서 살아갑니다. 점심 메뉴를 고르는 사소한 일부터, 인생의 방향을 결정짓는 중대한 약속까지 말입니다. 그리고 가끔은 실패한 선택 앞에서 '그때로 돌아갈 수만 있다면 좋을 텐데'라며 부질없는 미련을 두기도 합니다. 지만 영화 콜은 우리에게 아주 명확하고도 서늘한 어조로 경고합니다. 지나간 과거를 억지로 뜯어고치려 하는 행위는 결국 현재의 소중한 무언가를 잃게 만드는 부메랑이 되어 돌아올 뿐이라는 사실을 말이지요. 어쩌면 우리가 과거의 아픔이나 후회를 안고 살아가는 것 또한, 지금의 나를 완성하기 위해 반드시 거쳐야 했던 정당한 비용일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불완전한 과거들이 모여 지금의 단단한 나를 만드는 것인데, 그 아픈 조각을 억지로 빼내려다 보면 결국 현재의 삶 자체가 무너져 내릴 수밖에 없다는 진리를 깨닫게 되었습니다. 을 마치며, 혹시 지금 이 순간에도 과거의 어떤 선택을 후회하며 밤잠을 설치고 계신 분들이 있다면 이 영화를 조심스럽게 추천해 드리고 싶습니다. 물론 심장이 약하신 분들이라면 한밤중에 혼자 보시는 것은 절대 금물이라는 유쾌한 당부도 함께 전합니다. 전화벨 소리만 들어도 깜짝 놀라게 되는 부작용이 생길지도 모르니까요. 과거에 연연하기보다는 지금 내 손에 쥐어진 '현재'라는 시간과 내 곁에 있는 소중한 사람들에게 집중하는 것이야말로, 잔혹한 운명의 장난으로부터 나 자신을 지키는 가장 완벽한 방법이 아닐까 싶습니다. 부족한 제 글을 끝까지 정중하게 읽어주신 모든 분들께 진심으로 감사드리며, 여러분의 오늘 하루는 후회 없이 행복한 순간들로만 가득 채워지기를 온 마음으로 기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