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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변호인 국가 폭력의 야만성, 부림사건, 민주주의와 원칙주의자

by 수익기록자 2026. 6. 7.

저는 오랫동안 민주주의를 그냥 '기본값'으로 여기며 살아왔습니다. 그러다 영화 《변호인》을 보고 나서야, 지금 제가 누리는 이 평범한 일상이 얼마나 치열한 싸움 위에 세워진 것인지 처음으로 실감했습니다. 1980년대 초 군부독재 시절, 독서 모임 하나가 국가보안법 위반으로 둔갑하는 세상이 있었다는 사실을 머리가 아닌 가슴으로 받아들이는 데 이 영화가 결정적인 역할을 했습니다.

국가 폭력의 야만성과 깨어있는 시민의 책임

이 영화를 통해 나는 국가 권력의 본질과 민주주의의 가치에 대해 매우 깊고 비판적인 생각을 하게 되었습니다. 1980년대 초의 군부독재 정권은 정당성이 없는 자신들의 권력을 유지하기 위해 '국가안보'라는 거창하고 절대적인 명분을 내세웠습니다. 그리고 그 명분 아래, 국가가 가장 먼저 나서서 품고 보호해야 할 평범한 국민들과 학생들을 오히려 국가의 적으로 둔갑시키는 끔찍한 국가 폭력을 자행했습니다. 부림사건과 같은 용공 조작 사건은 단순한 과거의 비극을 넘어, 권력을 쥔 자들의 법과 제도를 자의적으로 해석하고 사유화할 때 우리 사회가 얼마나 잔혹하고 야만적으로 변할 수 있는지를 여실히 보여주는 뼈아픈 역사의 증거입니다. 법과 공권력은 마땅히 약자를 보호하고 정의를 실현하는 최후의 보루가 되어야 함에도 불구하고, 당시의 사법 체계와 경찰 조직은 철저히 독재 정권의 하수인이 되어 무고한 시민들의 인권을 무참히 짓밟는 흉기로 전락했습니다. 이는 권력에 대한 견제와 균형이 무너진 사회가 얼마나 치명적으로 위험한지를 분명하게 시사합니다. 나는 이 지점에서, 맹목적인 애국심을 강요하며 악랄한 고문조차 '국가를 위한 숭고한 일'이라고 궤변을 늘어놓던 영화 속 수사관들과 권력자들의 모습을 강하게 비판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진정한 국가의 안위는 국민의 자유와 인권을 탄압하고 공포를 조장함으로써 얻어지는 것이 아니라, 국민 개개인의 존엄성을 굳건히 지켜주고 억울함이 없게 할 때 비로소 확립되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부림사건, 실체 없는 혐의가 만들어낸 국가폭력

《변호인》의 모티브가 된 부림사건은 1981년 전두환 군사 정권 시절 부산에서 발생한 대표적인 용공 조작 사건입니다. 용공 조작이란 반공 이데올로기를 내세워 공산주의자와 무관한 인물을 공산주의자로 만들어 처벌하는 수법을 가리킵니다. 당시 부산 지역 대학생과 청년들이 독서 토론 모임을 가졌다는 이유만으로 영장도, 제대로 된 혐의도 없이 체포되어 가혹한 고문을 당했습니다.제가 이 장면들을 보면서 가장 충격받은 부분은 따로 있었습니다. 피해자들이 읽었다는 이른바 '불온서적'의 목록이었습니다. E.H. 카의 《역사란 무엇인가》, 조세희의 《난쟁이가 쏘아 올린 작은 공》 같은 책들이 포함되어 있었는데, 이 책들은 지금도 대학 필독서로 권장되는 작품들입니다. 실제로 당시 서울대에서 권장 도서로 추천하기도 했습니다. 합법적으로 유통되던 출판물이 국가보안법(NSL)이라는 상위법 하나로 불온 자료로 뒤바뀌는 구조, 그게 당시 사법 시스템이 작동하던 방식이었습니다. 국가보안법이란 반국가 단체를 이롭게 하는 행위를 처벌하는 법률로, 해석 범위가 매우 넓어 권위주의 정권 시절 광범위하게 남용된 역사가 있습니다. 이 사건에서 주목해야 할 또 하나의 핵심은 적법절차(Due Process) 위반입니다. 적법절차란 국가가 개인의 자유나 권리를 제한할 때 반드시 법률이 정한 절차와 요건을 지켜야 한다는 원칙입니다. 영장 없는 체포, 변호인 접견권 박탈, 자백 강요를 위한 물리적 고문은 모두 이 원칙을 정면으로 위반한 것이었습니다. 제가 영화를 보면서 "어떻게 저게 법정에서 증거로 쓰일 수 있지?"라는 말이 절로 나왔던 이유가 여기에 있습니다. 부림사건의 실제 결말은 훨씬 나중에야 왔습니다. 2009년 재심에서 헌법 위반 혐의에 대해 무죄 판결이 내려졌고, 2014년에는 국가법령정보센터를 통해 복권이 확정되었습니다. 피해자들이 억울함을 공식적으로 인정받기까지 30년 넘는 시간이 걸린 셈입니다. 그 기나긴 시간을 생각하면 지금도 마음이 무거워집니다.

부림사건이 우리에게 남긴 교훈을 정리하면 다음과 같습니다.

  • 법이 존재해도 집행 기관이 부패하면 법은 무기가 아닌 흉기가 된다
  • 이념의 언어는 권력자에게 무고한 시민을 처벌하는 가장 손쉬운 도구였다
  • 재심 제도와 같은 사법적 구제 장치는 민주주의가 갖춰야 할 최소한의 안전망이다

실제로 국가인권위원회의 자료에 따르면 1980년대 국가보안법 관련 구속 건수는 연간 수백 건에 달했으며, 상당수가 적법한 절차를 거치지 않은 것으로 이후 조사에서 확인되었습니다(출처: 국가인권위원회).

민주주의와 원칙주의자, 지금 이 시대에 필요한 이유

영화 속 송우석 변호사는 처음엔 세금 탈루를 합법으로 정리해 주는 세무 변호사로 돈을 꽤 잘 벌던 사람입니다. 부당한 권력에 맞서는 인권 변호사와는 거리가 멀었죠. 저도 처음엔 "이런 사람이 과연 끝까지 싸울 수 있을까?" 하고 반신반의했습니다. 그런데 그 변화의 과정이 오히려 설득력 있었습니다. 기득권을 포기할 이유가 없던 사람이, 눈앞의 부당함을 마주하고 스스로 성찰하는 순간 완전히 달라지는 서사였기 때문입니다.영화가 강조하는 인물의 핵심은 원칙주의입니다. 송 변호사는 법정에서 "대한민국 헌법 제1조, 대한민국의 주권은 국민에게 있고 모든 권력은 국민으로부터 나온다"를 선언합니다. 헌법 제1조란 국가 권력의 정당성이 오직 국민에게서 비롯된다는 민주공화국의 근본 원리를 명시한 조항입니다. 이 원칙을 법정에서, 그것도 권력의 한복판에서 외친다는 것이 그 시절엔 목숨을 걸어야 하는 일이었습니다. 제 경험상 이런 원칙주의자들이 실제로 얼마나 드문 존재인지 생각해 보면, 영화가 더 묵직하게 다가옵니다. 저도 일상 속에서 부당하다고 느끼는 순간들을 그냥 넘겨온 적이 적지 않습니다. "이걸 내가 굳이?"라는 계산이 앞설 때마다, 송 변호사가 떠오르는 게 솔직한 심정입니다. 감독은 인터뷰에서 "성찰하는 자와 성찰하지 않고 이용하는 자의 대립"이 영화의 핵심이라고 말했습니다. 저는 이 말이 지금 우리 사회에도 그대로 적용된다고 생각합니다. 민주주의 제도가 갖춰졌다고 해서 민주주의가 자동으로 굴러가는 것은 아닙니다. 대의민주주의(Representative Democracy)는 시민이 대표자를 선출하고 그 대표자의 권력 행사를 끊임없이 감시·비판하는 시스템입니다. 시민의 감시와 참여가 멈추는 순간, 제도는 그 본래 기능을 잃기 시작합니다. 실제로 국제 민주주의 지수를 발표하는 이코노미스트 인텔리전스 유닛(EIU)의 2023년 보고서에 따르면 한국은 완전 민주주의 국가로 분류되어 있으나, 시민 참여 부문에서는 개선의 여지가 있는 것으로 평가되었습니다(출처: Economist Intelligence Unit). 이 수치가 의미하는 것은 제도는 갖춰졌지만, 그 제도를 채우는 시민의 역할이 아직 충분하지 않을 수 있다는 것입니다.영화 《변호인》이 개봉 당시 천만 관객을 넘긴 것은 단순히 연출이나 연기의 힘만이 아니었다고 생각합니다. 많은 사람들이 스크린 속 이야기에서 자기 자신을 보았기 때문이 아닐까요. "나라면 저 상황에서 어떻게 했을까"라는 질문 앞에 선뜻 답을 내리지 못하면서도, 그 원칙 하나를 붙들고 끝까지 싸운 사람의 이야기에 뜨겁게 반응한 것이라고 저는 봅니다. 영화 한 편을 보고 나서 이런 생각까지 하게 된 건 솔직히 예상 밖이었습니다. 그냥 볼만한 역사 영화겠거니 했는데, 보고 나서 한참을 멍하니 있었습니다. 민주주의가 당연하다고 느껴질 때, 이 영화를 다시 꺼내 보시길 권합니다. 내가 지금 누리는 것들이 어디서 왔는지를 떠올리는 것만으로도, 지금 이 시대를 조금 더 주의 깊게 살아가는 이유가 생깁니다. 이 글은 영화와 역사적 사실을 바탕으로 한 개인적 경험과 의견을 공유한 것이며, 전문적인 법률 또는 역사학적 조언이 아닙니다.


참고: https://www.youtube.com/watch?v=OekugpEQSxI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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