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도로 위의 무법자와 통쾌한 대리만족의 필요성
운전을 시작한 지 어느덧 수년이 흘렀습니다. 처음 조심스레 운전대를 잡았을 때의 그 긴장감은 아직도 생생한데, 이제는 매일 출퇴근길을 오가며 도로 위의 무법자들을 보며 혀를 차는 여유(?) 혹은 분노가 생겼습니다. 특히 하루는 퇴근길에 꽤 아찔하고 화가 나는 사고를 직접 목격한 적이 있습니다. 무리하게 차선을 변경하며 칼치기를 하던 차량이 결국 옆 차를 긁고는, 멈추지도 않고 그대로 도주해 버리는 이른바 '뺑소니' 현장이었죠. 블랙박스가 이렇게나 보편화된 요즘 세상에 어떻게 저런 무모한 짓을 할까 싶으면서도, 남겨진 피해 차량 차주분이 차에서 내려 망연자실해하는 표정을 보니 제 속이 다 끓어오르더군요. 이런저런 일상 속 스트레스와 그날의 찝찝한 기억이 마음 한구석에 쌓여가던 어느 주말 저녁이었습니다. 시원한 맥주 한 캔을 따놓고 볼만한 영화가 없나 넷플릭스를 뒤적거리다 우연히 영화 <뺑반>을 발견했습니다. 평소 공효진, 류준열, 조정석이라는 믿고 보는 배우들의 조합을 좋아하기도 했지만, 무엇보다 '뺑소니 전담반'이라는 독특한 소재가 제 시선을 단번에 사로잡았습니다. 며칠 전 눈앞에서 목격했던 그 얄미운 도주 차량이 떠오르면서, 영화 속에서라도 통쾌한 정의 구현을 보고 싶다는 강렬한 충동이 들었기 때문이죠. 사실 개봉 당시에는 극장에 가서 볼 타이밍을 놓쳐서 아쉬웠던 작품인데, 오히려 이렇게 집에서 편안하게 스낵 무비로 즐기기에 딱 좋은 영화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흔한 형사물이나 범죄 영화는 수도 없이 많지만, 오직 '뺑소니' 하나만을 집요하게 추적하는 부서의 이야기라니 참신하게 다가왔습니다. 과연 저 스크린 속 형사들은 도로 위의 얌체 같고 악랄한 범죄자들을 어떻게 단죄할 것인지, 제 개인적인 분노와 호기심이 뒤섞인 채로 기대감을 안고 영화의 재생 버튼을 누르게 되었습니다.
신선한 캐릭터의 향연, 그리고 살짝 아쉬운 완급조절
영화를 보면서 가장 먼저, 그리고 가장 강렬하게 들었던 생각은 바로 '배우 조정석의 재발견'이었습니다. 평소 로맨틱 코미디나 능청스럽고 유쾌한 캐릭터로 우리에게 익숙했던 그가, 통제 불능의 스피드 광이자 소시오패스적 성향을 가진 재벌 2세 악역 '정재철'을 연기한다는 것 자체가 신선한 충격이었습니다. 말을 살짝 더듬으면서도 눈빛에는 서늘한 광기가 서려 있는 그의 연기는 극의 긴장감을 멱살 잡고 끌어올리는 일등 공신이었습니다.반면 류준열 배우가 맡은 '서민재' 캐릭터의 설정도 무척 흥미로웠습니다. 겉보기엔 어딘가 헐렁해 보이고 매뉴얼보다는 냄새와 본능에 의존하는 동네 순경 같지만, 사실은 자동차에 대한 천재적인 감각과 어두운 과거를 깊숙이 숨기고 있는 인물이라는 점이 극의 몰입도를 높여주었죠. 여기에 엘리트 경찰 '은시연' 역의 공효진 배우는 자칫 각자의 개성으로 붕 뜰 수 있는 강한 캐릭터들 사이에서 극의 중심을 꽉 잡아주는 단단한 앵커 역할을 훌륭하게 해냈습니다. 하지만 스토리 전개 방식이나 연출에 있어서는 솔직히 아쉬운 부분도 분명 존재했습니다. 영화의 전반부가 뺑소니 전담반의 치열한 수사 과정을 촘촘하게 쫓아가는 흥미진진한 범죄 스릴러의 느낌이었다면, 중후반부로 넘어갈수록 수사극 본연의 매력보다는 카레이싱 액션에 지나치게 치중하는 듯한 인상을 받았습니다. 특히 후반부의 대규모 추격전은 시각적인 쾌감은 확실히 챙겼지만, 한국 상업 영화 특유의 작위적인 전개와 감정을 쥐어짜 내려는 듯한 이른바 '신파' 요소가 살짝 섞여 들어가면서 초반이 주었던 신선함이 다소 깎이는 기분이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자본과 권력으로 자신의 추악한 죄를 덮으려는 안하무인 범죄자를 끝까지 물고 늘어지는 뺑반 팀의 끈질긴 집념은 묘한 카타르시스를 선사하기에 충분했습니다.
주말을 책임질 훌륭한 팝콘 무비, 그리고 안전운전의 무게
결론적으로 영화 <뺑반>은 후반부의 몇몇 연출적인 아쉬움에도 불구하고, 킬링타임용으로 즐기기엔 더할 나위 없이 훌륭한 오락 영화입니다. 극장 개봉 당시 흥행 성적이 대박이라고 할 만큼 폭발적이지는 않았던 것으로 기억하는데요. 아마도 관객들이 초반에 기대했던 쫀쫀한 정통 범죄 수사극의 결과, 영화 후반부의 무한 질주 액션의 결이 다소 달랐기 때문이 아닐까 조심스레 추측해 봅니다. 하지만 영화를 보기 전 기대치를 조금만 다르게 맞추고 화려한 카 액션과 명배우들의 불꽃 튀는 연기 대결 그 자체에 초점을 맞춘다면, 2시간 남짓한 러닝타임 동안 충분히 시간 가는 줄 모르고 재미있게 즐길 수 있는 작품입니다.이 영화가 남기는 가장 큰 미덕은 '뺑소니'라는 범죄가 그저 가벼운 접촉 사고의 연장이 아니라, 얼마나 무책임하고 한 사람의 인생을 파괴할 수 있는 잔인한 행위인지를 다시 한번 묵직하게 상기시켜 준다는 점입니다. 우리가 매일 편리하게 이용하는 자동차라는 도구가 한순간의 이기심과 무책임으로 인해 누군가의 일상을 처참하게 망가뜨리는 흉기가 될 수 있다는 사실을 새삼 깨닫게 되더군요. 리뷰를 쓰며 영화의 여운을 곱씹어 보니, 지금 이 순간에도 보이지 않는 매연 가득한 도로 위에서 시민들의 평화와 안전을 위해 밤낮없이 달리고 있을 실제 '뺑소니 전담반' 경찰분들의 노고에 깊은 감사함과 경의를 표하게 됩니다. 이번 주말 저녁, 일주일간 쌓인 스트레스를 시원하게 날려버릴 짜릿한 액션이 끌리신다면, 혹은 배우 조정석의 소름 돋는 첫 악역 연기가 궁금하시다면 영화 <뺑반>을 적극 추천해 드립니다. 고소한 팝콘이나 냉장고에서 갓 꺼낸 시원한 맥주 한 잔을 곁들이며 뇌를 비우고 화면 속 속도감에 몰입하기에 이만한 영화도 드물거든요. 제 개인적인 평점은 5점 만점에 3.5점 정도를 주고 싶습니다. 너무 무겁고 어둡지도, 그렇다고 마냥 가볍지만도 않은 딱 적당한 무게감의 웰메이드 한국형 팝콘 무비. 오늘 밤, 여러분도 뺑반 팀의 브레이크 없는 추격전에 기꺼이 동승해 보시는 건 어떨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