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어느 지친 주말 밤, 우연히 만난 강렬한 이끌림
평일 내내 업무와 일상에 치여 몸도 마음도 완전히 방전되었던 어느 토요일 밤이었습니다. 침대에 누워 스마트폰 화면만 의미 없이 위아래로 굴리던 중, 문득 넷플릭스 추천 목록에 뜬 영화 <사자>의 포스터가 눈에 들어왔습니다. 사실 개봉 당시(2019년)에는 극장에서 볼까 말까 고민만 하다가 타이밍을 놓쳤던 작품이었거든요. 평소에 엑소시즘이나 오컬트 장르를 워낙 좋아하기도 하고, 박서준 배우와 안성기 배우의 조합이라는 것만으로도 기본은 하겠다는 생각에 가벼운 마음으로 재생 버튼을 눌렀습니다. 솔직히 말하면 주말 밤의 무료함을 달래줄 킬링타임용 영화 정도를 기대했던 게 사실입니다. 극 초반, 어두운 방 안에서 홀로 스크린을 마주했을 때의 그 고요함과 영화 시작과 동시에 흘러나오는 묵직한 오프닝 음악은 순식간에 저를 몰입하게 만들었습니다. 영화 속 주인공 '용후'가 어린 시절 아버지를 잃고 세상과 신에 대한 깊은 증오를 품은 채 격투기 선수가 된 모습은, 왠지 모르게 제 안의 어두운 감정들을 건드리는 구석이 있었습니다. 살다 보면 누구나 "왜 나한테만 이런 일이 일어날까?" 하는 억울함이나 세상에 대한 원망을 품게 되는 순간이 있잖아요. 저 역시 최근 개인적으로 풀리지 않는 일들 때문에 마음속에 알 수 없는 화가 가득 차 있던 시기였기에, 용후의 날 선 눈빛과 거친 행동들이 단순한 영화 속 연기로만 보이지 않았습니다. 특히 손바닥에 원인 모를 피가 나는 상처가 생기고, 꿈속에서 기이한 현상을 겪으며 괴로워하는 장면에서는 저도 모르게 마른침을 삼키며 몰입했습니다. 주말 예능을 보며 억지로 웃는 것보다, 차라리 이렇게 가슴을 옥죄어오는 어두운 긴장감에 온전히 나를 던지는 것이 오히려 기분 전환이 되는 독특한 경험이었습니다. 팝콘 대신 시원한 맥주 한 캔을 따서 들이키며, 영화가 주는 서늘하고도 뜨거운 에너지에 완벽하게 압도당한 채 새벽을 맞이했던 그날 밤의 공기가 아직도 생생하게 기억납니다.
한국형 오컬트와 액션의 만남, 신선함과 아쉬움 사이
영화 <사자>는 기존의 한국 영화에서 쉽게 볼 수 없었던 독특한 장르적 변주를 시도했다는 점에서 매우 흥미로웠습니다. 보통 '엑소시즘'이라고 하면 검은 사제복을 입은 신부님들이 성수를 뿌리며 라틴어 기도문을 외우는 정적인 정통 오컬트를 떠올리기 마련입니다. 영화 <검은 사제들>이 대표적이죠. 하지만 <사자>는 여기에 '격투기 액션'이라는 완전히 상반된 장르를 버무렸습니다. 구마 사제인 '안신부(안성기 분)'를 도와 악령을 물리치는 용후(박서준 분)의 주먹에 깃든 성스러운 불꽃은 신선한 충격이었습니다. 악을 말이나 기도로만 제압하는 것이 아니라, 물리적인 타격으로 때려잡는 일종의 '히어로물' 같은 쾌감을 선사했기 때문입니다. 박서준 배우의 탄탄한 피지컬과 격투기 액션은 시각적인 즐거움을 주기에 충분했고, 안성기 배우의 묵직하고 인자한 카리스마는 영화의 중심을 단단히 잡아주어 장르가 너무 가벼워지지 않도록 지탱해 주었습니다. 그러나 완벽해 보였던 이 신선한 시도 뒤에는 다소 명확한 아쉬움도 공존했습니다. 오컬트 특유의 심리적인 공포와 긴장감을 기대했던 관객들에게는, 후반부로 갈수록 액션의 비중이 커지면서 몰입도가 다소 깨질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특히 우도환 배우가 연기한 악을 퍼뜨리는 검은 주교 '지신'과의 최종 결전 투는 긴장감 넘치는 심리전이라기보다는 판타지 액션 영화의 한 장면에 가까웠습니다. 손에 불을 쥐고 싸우는 주인공의 모습은 멋있긴 했지만, 오컬트 장르 본연의 눅눅하고 기괴한 분위기를 좋아하시는 마니아층에게는 호불호가 갈릴 만한 요소였습니다. 게다가 세계관을 넓히려는 의도가 너무 과했는지, 악의 세력에 대한 전사(Story)나 설명이 다소 부족해 스토리가 뚝뚝 끊기는 느낌을 받기도 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한국 영화 시장에서 이 정도 규모의 제작비를 투자해 새로운 장르적 실험을 감행했다는 점, 그리고 배우들의 열연이 구멍 없이 빛났다는 점만으로도 충분히 박수를 받을 만한 가치가 있는 작품이라고 생각합니다.
상처 입은 영혼들이 서로를 구원하는 따뜻한 메시지
결과적으로 영화 <사자>는 제게 단순한 킬링타임용 액션 영화 그 이상의 여운을 남겨주었습니다. 영화의 크레딧이 올라가고 방 안의 불을 다시 켰을 때, 제 마음속에 가장 크게 남은 감정은 공포나 액션의 짜릿함이 아니라 묘한 '위로'였습니다. 영화는 겉으로는 악령과 싸우는 화려한 액션을 표방하고 있지만, 그 본질을 들여다보면 결국 '상처받은 인간들의 연대와 구원'을 이야기하고 있습니다. 신을 원망하며 마음의 문을 닫아걸었던 청년 용후가, 나약하지만 신념을 잃지 않는 노신부 안신부를 만나며 마음의 상처를 치유해 나가는 과정은 참 따뜻했습니다. 안신부가 용후를 바라보던 그 부성애 넘치는 따뜻한 눈빛은, 세상의 모진 풍파에 지쳐있던 저에게도 마치 "그동안 고생 많았다"라고 말해주는 듯한 큰 울림으로 다가왔습니다. 세상을 살아가다 보면 우리 모두 각자의 마음속에 어두운 상처나 악령 하나쯤은 품고 살아가기 마련입니다. 그것이 열등감이든, 분노든, 슬픔이든 말이죠. 영화 속 용후가 자신의 상처(손바닥의 피)를 오히려 악을 물리치는 강력한 무기로 승화시켰듯, 우리 역시 지금 겪고 있는 아픔과 시련을 통해 더 단단한 사람이 될 수 있지 않을까 하는 희망적인 생각을 해보게 되었습니다. 화려한 CG와 다소 유치할 수 있는 설정을 인간미 넘치는 서사로 감싸 안은 이 영화는, 팍팍한 일상에 지친 분들에게 아드레날린 분출과 동시에 따뜻한 카타르시스를 선물해 줄 것입니다. 이번 주말, 세상에 치여 마음이 서늘해진 분들이라면 불을 끄고 영화 <사자>가 전하는 뜨거운 불꽃을 온몸으로 느껴보시길 진심으로 추천해 드립니다. 후회 없는 시간이 될 거라고 확신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