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고인 물 백수의 심장을 뛰게 한 검은 고양이… 아니, 드래곤과의 만남
솔직히 고백하자면, 내가 이 영화를 처음 보게 된 계기는 그리 거창하지 않았다. 어느 주말, 넷플릭스 메인을 목적 없이 스크롤하다가 팝콘이나 축내며 멍 때릴 심산으로 ‘드래곤 길들이기’를 클릭했다. 평소 애니메이션은 애들이나 보는 거라는 알량한 편견이 조금은 있었던 것 같다. 그런데 웬걸, 영화가 시작되고 바이킹 마을의 웅장한 오프닝이 나오는 순간부터 내 눈동자는 화면에 고정됐다. 특히 주인공 히컵이 모두가 두려워하는 전설의 드래곤 ‘나이트 퓨어리’를 함정에 빠트리고, 차마 죽이지 못해 끈을 잘라주던 그 장면에서 내 심장도 같이 덜컥 내려앉았다. 그렇게 마주한 드래곤 ‘투슬리스’의 비주얼은 충격 그 자체였다. 무시무시한 괴물일 줄 알았는데, 이건 드래곤의 탈을 쓴 거대한 검은 고양이가 아닌가! 눈을 동그랗게 뜨고 히컵이 준 생선을 씹어 삼키더니, 이내 이빨을 쏙 감추고 헤벌쭉 웃는 모습에 나는 완전히 무장해제 되었다. 나도 모르게 모니터 화면으로 손을 뻗어 코 끝을 만져보고 싶을 정도였다. 히컵이 투슬리스의 신뢰를 얻기 위해 땅에 그림을 그리고, 조심스럽게 손을 내밀어 투슬리스의 코와 교감하는 그 명장면에서는 온몸에 소름이 돋았다. 방구석에서 츄리닝 차림으로 팝콘을 씹던 20대 백수의 심장이 이토록 거세게 뛴 건 참 오랜만이었다. 영화가 끝난 후 내 방의 풍경은 그야말로 가관이었다. 우리 집에서 키우는 치즈냥이 ‘나비’를 붙잡고 투슬리스라 부르며 히컵처럼 코를 맞대려고 시도하다가 냥냥펀치를 세 대나 맞았다. 하지만 얼굴의 욱신거림도 잊은 채, 그날 밤 나는 새벽까지 드래곤 길들이기 OST인 ‘Test Drive’를 무한 반복 재생하며 방구석을 날아다니는 상상을 했다. 나이 먹고 주책이라는 생각이 들 법도 했지만, 오랜만에 가슴속에서 무언가 몽글몽글하고 뜨거운 감정이 솟구치는 기분 좋은 경험이었다. 이 영화는 단순한 킬링타임용 애니메이션이 아니라, 내 메마른 감성을 완전히 뒤흔들어 놓은 인생작의 시작이었다.
뻔한 영웅 서사는 가라, ‘다름’을 인정하는 진짜 용기
많은 할리우드 영화들이 ‘적을 무찌르고 영웅이 되는’ 뻔한 공식을 따르지만, 드래곤 길들이기가 내 머리를 딩동댕 치듯 강렬한 인상을 남긴 이유는 전혀 다른 메시지를 던지기 때문이다. 바이킹 마을 사람들에게 드래곤은 무조건 죽여야 하는 ‘해충’이자 ‘원수’였다. 하지만 멸치처럼 멸시받던 히컵은 드래곤을 죽이는 대신 ‘관찰’하기 시작했다. 그들이 왜 인간을 공격하는지, 무엇을 좋아하고 무엇을 무서워하는지 귀를 기울인 것이다. 여기서 나는 뒤통수를 한 대 세게 맞은 기분이었다. 우리는 살면서 내가 잘 모르는 존재, 혹은 나와 다른 생각을 가진 사람을 얼마나 쉽게 ‘적’으로 규정하고 배척해 왔던가. 히 영화 후반부에 히컵과 투슬리스가 겪는 신체적 변화는 이 영화가 가진 철학의 정점을 보여준다. 투슬리스는 꼬리 날개의 반쪽을 잃어 혼자서는 날 수 없고, 히컵 역시 마지막 전투에서 한쪽 다리를 잃게 된다. 서로가 서로의 완벽한 결함을 채워줄 때만 비로소 하늘을 날 수 있는 ‘상호보완적’인 관계가 되는 것이다. 한쪽 다리에 의족을 찬 히컵이 투슬리스의 등에 올라타 멋지게 비행하는 모습은 눈물이 핑 돌 만큼 감동적이었다. 완벽하지 않아도 괜찮다고, 서로의 상처를 보듬고 연대할 때 더 위대한 일을 해낼 수 있다는 메시지가 자막 없이도 온몸으로 전달됐다. 즘 세상은 너무 각박하다. 나와 조금만 다르면 혐오하고, 편을 갈라 싸우기 바쁘다. 이런 시대를 살아가는 우리에게 드래곤 길들이기는 진짜 용기가 무엇인지 보여준다. 칼을 들고 상대를 굴복시키는 것이 용기가 아니라, 칼을 내려놓고 먼저 손을 내밀어 상대의 이야기를 들어주는 것이 진짜 강함이라는 것을 말이다. 드래곤의 치명적인 약점인 ‘턱 밑 긁어주기’를 찾아내 마법처럼 드래곤들을 잠재우던 히컵의 모습처럼, 우리에게도 세상을 부드럽게 바꿀 수 있는 따뜻한 시선이 필요한 게 아닐까 하는 깊은 생각에 잠기게 만드는 영화다.
당신의 가슴속에 잠든 ‘투슬리스’를 깨울 시간
결론적으로 드래곤 길들이기는 남녀노소 불문하고 인생에 한 번쯤은 꼭 봐야 하는 마스터피스다. 화려한 3D 비행 연출과 귀를 황홀하게 만드는 오케스트라 사운드 트랙만으로도 눈과 귀가 즐겁지만, 영화가 끝난 뒤 가슴속에 남는 묵직한 울림은 쉽게 가시지 않는다. 겉보기엔 그저 거대한 도마뱀들의 재롱잔치 같아 보여도, 그 속에는 소외된 이들의 연대, 편견의 극복, 그리고 진정한 소통이라는 묵직한 인생의 진리가 아주 맛있게 버무려져 있다. 약 지금 삶이 무료하고, 매일 똑같은 톱니바퀴 같은 일상에 지쳐있다면 당장 이 영화를 틀어보길 권한다. 웅장한 음악과 함께 끝없는 청정 하늘을 가르며 활강하는 히컵과 투슬리스를 보고 있노라면, 가슴속이 뻥 뚫리는 카타르시스를 느낄 수 있을 것이다. 그리고 영화를 끄고 나면 내 주변에 있는 소중한 사람들을 한 번 더 돌아보게 될지도 모른다. 내가 먼저 마음을 열지 않아서 적으로 남아있는 ‘나만의 드래곤’이 있지는 않은지 말이다. 을 마치며, 나도 오늘 밤에는 내 방구석에 처박혀 있는 고양이 장난감을 들고 우리 집 ‘투슬리스(냥이)’에게 다가가 조심스럽게 손을 내밀어 보려고 한다. 비록 또다시 하악질과 함께 냥냥펀치가 날아올지라도, 히컵이 포기하지 않았던 것처럼 나도 소통을 시도해 보련다. 혹시 아는가? 어느 날 우리 집 고양이가 나를 등에 태우고 아파트 하늘 위를 날아올라 줄지! 상상만으로도 유쾌해지는 이 마법 같은 영화, 아직 안 본 눈이 있다면 격하게 부러울 따름이다. 당장 팝콘각 잡고 드래곤의 세계로 떠나보시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