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002년, 그 뜨거웠던 여름의 이면
2002년 한일 월드컵 당시 나는 온 국민과 마찬가지로 붉은 옷을 입고 거리로 뛰어나가 목이 터져라 "대한민국"을 외치던 평범한 학생이자 국민 중 한 명이었다. 온 나라가 축제 분위기에 휩싸여 있었고, TV만 틀면 축구 이야기와 광화문을 가득 채운 인파의 모습만 흘러나오던 시절이었다. 솔직히 고백하자면, 그때 서해에서 무슨 일이 벌어지고 있었는지, 어떤 젊은이들이 목숨을 걸고 바다를 지키고 있었는지 전혀 알지 못했다. 뉴스에서 잠시 연평도 근처에서 교전이 있었다는 소식을 스치듯 들었던 기억은 어렴풋이 나지만, 내 관심은 오직 당장 오늘 저녁에 있을 축구 경기 스코어와 4강 신화라는 기적 같은 현실에만 쏠려 있었다. 부끄럽게도 그것이 당시 나의 솔직한 모습이었다. 세월이 흘러 영화 <연평해전>이 개봉한다는 소식을 들었을 때, 마음 한구석에 묘한 부채감이 엄습했다. '내가 축제를 즐기며 웃고 떠들던 그 순간에, 누군가는 차가운 바다 위에서 피를 흘리며 죽어가고 있었구나'라는 자각이 뒤늦게 찾아온 것이다. 극장 의자에 앉아 불이 꺼지기 전까지도 마음이 참 무거웠다. 영화가 시작되고 스크린에 2002년의 풍경이 재현되는 순간, 격세지감이 느껴짐과 동시에 숨이 턱 막혀왔다. 영화 속 참수리 357호 대원들도 나와 다를 바 없는, 월드컵에 열광하고 집에서 기다리는 가족을 그리워하는 평범한 20대 청년들이었기 때문이다. 특히 윤영하 대위, 한상국 하사, 박동혁 병장 등 인물들의 일상이 그려질 때 마음이 더 아려왔다. 그들도 우리처럼 맛있는 것을 좋아하고, 사랑하는 사람과 미래를 꿈꾸던 평범한 이들이었다는 사실이 가슴을 세게 쳤다. 영화를 보는 내내 2002년의 내 과거 모습과 스크린 속 대원들의 모습이 계속해서 교차했다. 내가 누렸던 그 평화롭고 뜨거웠던 여름이 사실은 이들의 거룩한 희생 위에 위태롭게 얹혀 있던 선물이었다는 것을, 영화를 보는 내내 온몸으로 뼈저리게 느끼며 참회의 눈물을 흘릴 수밖에 없었다.
잊힌 영웅들, 그리고 우리가 마주해야 할 진실
영화 <연평해전>을 보면서 가장 강렬하게 들었던 생각은 '기록과 기억의 의무'에 대한 것이었다. 영화 중반부를 지나 본격적인 교전이 시작되었을 때, 스크린을 차마 똑바로 쳐다보기 힘들 정도로 참혹했다. 총탄이 빗발치고 살점이 튀는 전장의 한복판에서, 대원들이 서로를 지키기 위해 처절하게 몸을 던지는 모습은 단순한 스펙터클을 넘어선 거대한 비극이었다. 조타키를 끝까지 놓지 않기 위해 자신의 손을 묶었던 한상국 하사의 모습이나, 부상을 입은 와중에도 전우들을 살리기 위해 종횡무진하던 박동혁 병장의 모습은 인간이 가질 수 있는 가장 고귀한 용기가 무엇인지 보여주었다. 이 영화가 우리에게 던지는 메시지는 명확하다고 생각한다. 정치적인 이념이나 사상을 떠나서, 국가와 국민을 위해 자신의 가장 소중한 청춘과 목숨을 바친 이들을 우리는 어떻게 대하고 기억하고 있는가에 대한 질문이다. 당시에 월드컵 열기에 가려져 이들의 영결식이 얼마나 쓸쓸하게 치러졌는지, 그리고 유가족들이 오랜 세월 동안 어떤 고통과 외로움 속에서 살아왔는지를 생각하면 분노와 미안함이 동시에 치밀어 오른다. 국가는 이들을 제대로 예우하지 못했고, 사회는 이들의 희생을 너무나 빠르게 망각했다. 또한, 영화는 단순히 '북한은 주적이다'라는 반공주의적 메시지를 주입하려 하지 않는다. 그보다는 전쟁이라는 극단적인 상황 속에서 평범한 인간이 겪어야 하는 공포, 그리고 그것을 이겨내는 전우애와 책임감에 초점을 맞춘다. 참수리 357호는 우리 사회의 축소판과도 같았다. 각자 다른 사연을 가지고 입대해 하나의 배를 탄 그들이 보여준 조건 없는 희생을 보며, 오늘날 극단적인 이기주의와 갈등으로 점철된 우리 사회가 부끄러워졌다. 우리가 지금 누리고 있는 자유와 평화는 결코 공짜가 아니며, 누군가의 피 묻은 군복 위에 세워진 것임을 절대로 잊어서는 안 된다는 생각이 머릿속을 떠나지 않았다.
기억의 힘이 만드는 더 나은 내일을 꿈꾸며
영화가 끝난 후 엔딩 크레딧이 올라가고, 실제 유가족들의 인터뷰와 당시 생존 대원들의 생생한 증언이 화면에 나올 때 극장 안은 그야말로 눈물바다가 되었다. 나 역시 쉽게 자리를 뜨지 못하고 한참 동안 먹먹한 가슴을 진정시켜야 했다. 영화 <연평해전>은 나에게 단순한 팝콘무비나 킬링타임용 영화가 아니었다. 내 삶의 태도를 돌아보게 만들고, 내가 발을 딛고 서 있는 이 땅의 소중함을 다시금 깨닫게 해 준 일종의 '정신 번쩍 드는 각성제' 같은 작품이었다. 시간이 흐르면 모든 기억은 희미해지기 마련이다. 2002년으로부터 이미 수많은 세월이 흘렀고, 이제는 연평해전을 교과서의 한 줄이나 먼 과거의 사건으로만 기억하는 세대들이 늘어나고 있다. 하지만 기억하지 않는 역사는 반복된다고 했다. 우리가 이들의 이름을 하나하나 불러주고 기억할 때, 그들의 희생은 비로소 가치를 지니게 된다고 믿는다. 6인의 용사뿐만 아니라 당시 부상을 입고 여전히 육체적, 정신적 트라우마와 싸우고 있을 생존 장병들에게도 우리가 지속적인 관심과 따뜻한 시선을 보내야 하는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 블로그를 통해 이 영화에 대한 글을 쓰는 지금 이 순간에도, 여전히 보이지 않는 곳에서 밤낮없이 국방의 의무를 다하고 있는 수많은 국군 장병들이 떠오른다. 그들이 있기에 나는 오늘도 안전하게 집에서 글을 쓰고, 가족들과 따뜻한 밥을 먹으며 내일을 계획할 수 있다. 영화 <연평해전>이 우리에게 남긴 가장 큰 유산은 '감사함'이라는 감정의 회복이 아닐까 싶다. 이번 주말에는 스마트폰을 잠시 내려놓고, 우리를 위해 기꺼이 청춘을 바친 연평해전의 영웅들을 추모하며 그날의 바다를 마음속으로 깊이 애도해 보는 시간을 가져보기를 많은 이들에게 권하고 싶다. 그들의 숭고한 희생에 고개 숙여 깊은 감사를 표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