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는 영화를 볼 때 악역 캐릭터에 이렇게까지 마음이 복잡해진 적이 없었습니다. 2015년 개봉해 전국 관객 1,300만 명을 돌파한 류승완 감독의 베테랑은 통쾌한 오락 영화로 기억되지만, 제게는 한 장면이 내내 발목을 붙잡았습니다. 오랜 친구가 컨테이너 트레일러 기사로 일하고 있기 때문입니다.조태오라는 악역, 그 설계의 빛과 그림자일반적으로 매력적인 악역이란 비극적 서사(backstory)를 품고 있어야 한다고 알려져 있습니다. 여기서 비극적 서사란 악역이 악인이 될 수밖에 없었던 성장 배경이나 트라우마를 말하는 것으로, 관객이 악역에게 일말의 연민을 품게 만드는 장치입니다. 그런데 제 경험상 이 공식이 항상 옳지는 않습니다.베테랑의 악역 조태오는 그 반대 방향을 택했습니다. 촬영 초반 감독이 몰입감을 ..
한국 오컬트 장르 최초 천만 관객을 돌파한 영화가 파묘가 아니라, 그 감독의 데뷔작에서 이미 그 토대가 만들어졌다는 사실을 아는 사람은 생각보다 많지 않습니다. 저는 평소 퇴마나 구마와 관련된 소재에 유독 끌리는 편인데, 검은 사제들을 처음 봤을 때 단순한 공포 영화가 아니라는 걸 금방 느꼈습니다.한국 땅에 엑소시즘이 뿌리내리기까지일반적으로 엑소시즘은 할리우드 공포 영화의 전유물로만 알려져 있지만, 실제로는 가톨릭 교회 공식 의식으로 현재도 전 세계에서 시행되고 있습니다. 엑소시즘(Exorcism)이란 악령이나 사악한 영적 존재가 빙의된 사람에게서 그것을 몰아내는 종교의식을 말하며, 가톨릭에서는 이를 집행하는 사제를 구마사제(Exorcist)라고 부릅니다. 교황청은 1999년 엑소시즘 의식 지침을 공식 ..
솔직히 처음 사바하를 봤을 때, 저는 김제석이 그냥 교묘하게 포장된 사이비 교주라고 생각했습니다. 모태신앙으로 자란 제게 불교와 밀교가 뒤섞인 이 영화는 낯설면서도 묘하게 익숙했고, 박웅재 목사가 던지는 질문들이 제 안에 오래 묵혀둔 말들을 건드리는 느낌이었습니다. 종교적 배경 지식이 있는 분이라면 이 영화 한 번으로는 부족합니다.박웅재 목사가 가려운 곳을 긁어준 이유저는 유치원부터 선교원을 다녔고, 중학생 때까지는 꽤 신실한 기독교인이었습니다. 사회생활할 때 함께 일하던 직장 동료가 방금 전까지 같이 웃고 떠들다가 사고사를 당하는 일을 겪었습니다. 그 순간 저는 기도 대신 원망부터 나왔습니다. 그렇게 착한 사람을 왜 이렇게 데려가냐고, 신이 정말 존재하는 거 맞냐고, 자해적인 목소리로 하나님을 원망했던..
사회생활을 막 시작했을 때, 저는 매일 "나는 왜 이렇게 못할까"를 입에 달고 살았습니다. 부장님께 호되게 혼나고 퇴근길에 멍하니 앉아 있다가 우연히 본 영화 한 편이 머릿속에서 떠나질 않았습니다. 2011년 개봉작 리미트리스, 신약 한 알로 평범한 인간이 완전히 달라진다는 이야기였습니다. 그 장면들이 유독 강렬하게 박혔던 건, 제 당시 처지와 너무 겹쳐 보였기 때문입니다.영화 속 뇌과학, 실제로는 어떨까리미트리스의 핵심 설정은 인간이 뇌를 20%밖에 사용하지 못한다는 가설에서 출발합니다. 주인공 에디 모라는 NZT-48이라는 약물을 복용한 뒤 뇌 활용률이 100%로 끌어올려져 순식간에 천재로 변합니다. 여기서 뇌 활용률이란 평소 사용되지 않는 신경 회로가 완전히 개방되어 기억력, 판단력, 언어 습득 능..
영화를 켜기 전까지만 해도 그냥 음악 영화겠거니 했는데, 보고 나서 한동안 멍하게 앉아 있었습니다. 제가 직장생활을 하면서 느껴왔던 압박감이랑 묘하게 겹쳐 보여서, 단순한 감동이 아니라 뭔가 불편한 감정이 뒤섞였습니다. 이 글은 그 감정을 정리하면서, 영화가 던지는 질문을 같이 생각해보고 싶어서 씁니다.욕망과 집착 — 이 영화가 불편한 이유영화 위플래시는 뉴욕의 가상 음악 명문 셰이퍼 음악원을 배경으로 합니다. 주인공 앤드류 나이먼은 세계 최고의 재즈 드러머를 꿈꾸는 신입생이고, 플레처 교수는 그 학교에서 가장 뛰어나면서도 가장 두려운 지휘자입니다.플레처의 교육 방식은 쉽게 말해 공포 기반의 동기 부여입니다. 음정이 조금 흔들려도 악보를 집어던지고, 템포가 미세하게 틀려도 얼굴을 향해 고함을 지릅니다. ..
이 영화는 초등학생시절 어머님과 함께 집에서 시청했었습니다. 그때는 단순히 웃기기만 했던 영화로 기억되었습니다. 초등학생 눈에는 수녀들이 춤추고 노래하는 게 마냥 웃겼으니까요. 그런데 성인이 된 후 어머니와 예전 추억이 떠올라 거실에 같이 앉아 다시 한번 영화를 시청했는데, 화면을 보는 내내 가슴이 이상하게 벅차올랐습니다. 1992년작 Sister Act는 시간이 지나도 여전히 사람 마음을 건드리는 영화입니다.마피아에서 수녀원으로, 말이 안 되는 상황이 만들어낸 이야기이 영화의 출발점은 사실 꽤 자극적입니다. 카지노 가수 들로리스가 마피아 보스의 살인 현장을 목격하고, 경찰의 증인 보호 프로그램(Witness Protection Program)에 들어가면서 이야기가 시작됩니다. 증인 보호 프로그램이란 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