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상 탈출을 꿈꾸던 주말, 모가디슈를 만나다평소에 영화를 무척 좋아하는 편이지만, 한동안 바쁜 일상에 치여 영화관은커녕 집에서 OTT 서비스를 켜는 것조차 사치처럼 느껴지던 시기가 있었습니다. 온종일 컴퓨터 앞에 앉아 모니터와 씨름하다 보면 온몸의 진이 다 빠져나가고, 주말이 되어도 그저 침대에 누워 스마트폰 숏폼 영상만 의미 없이 넘기는 게 전부였죠. 그러던 어느 날, 문득 가슴을 뻥 뚫어줄 만한 강렬하고도 묵직한 이야기가 그리워졌습니다. 대중들의 평이 워낙 좋았던 기억이 나, 주말 저녁 큰맘 먹고 거실 불을 모두 끈 채 텔레비전 앞에 앉아 영화 '모가디슈'를 재생했습니다. 영화가 시작되기 전, 입이 심심할까 봐 따뜻한 보리차 한 잔을 머그잔에 담아두고 소파 깊숙이 몸을 묻었습니다. 사실 처음에는 단순..
도로 위의 무법자와 통쾌한 대리만족의 필요성운전을 시작한 지 어느덧 수년이 흘렀습니다. 처음 조심스레 운전대를 잡았을 때의 그 긴장감은 아직도 생생한데, 이제는 매일 출퇴근길을 오가며 도로 위의 무법자들을 보며 혀를 차는 여유(?) 혹은 분노가 생겼습니다. 특히 하루는 퇴근길에 꽤 아찔하고 화가 나는 사고를 직접 목격한 적이 있습니다. 무리하게 차선을 변경하며 칼치기를 하던 차량이 결국 옆 차를 긁고는, 멈추지도 않고 그대로 도주해 버리는 이른바 '뺑소니' 현장이었죠. 블랙박스가 이렇게나 보편화된 요즘 세상에 어떻게 저런 무모한 짓을 할까 싶으면서도, 남겨진 피해 차량 차주분이 차에서 내려 망연자실해하는 표정을 보니 제 속이 다 끓어오르더군요. 이런저런 일상 속 스트레스와 그날의 찝찝한 기억이 마음 한구..
넷플릭스에서 마주한 한국형 SF의 첫인상주말 저녁, 일주일 동안 쌓인 피로를 풀기 위해 소파에 깊숙이 기대어 넷플릭스를 켰습니다. 평소 같으면 스릴러나 범죄 다큐멘터리를 찾았겠지만, 그날따라 메인 화면에 대문짝만 하게 걸려 있던 영화 의 포스터가 눈에 들어오더군요. 한국에서 만든 최초의 우주 배경 SF 블록버스터라는 타이틀은 개봉 전부터 워낙 뉴스와 커뮤니티를 통해 많이 접했던 터라 궁금증이 일었습니다. 솔직히 말씀드리자면 기대감보다는 걱정이 앞섰습니다. '어설픈 CG로 할리우드 영화를 흉내 내다가 이도 저도 아닌 망작이 된 건 아닐까?' 하는 한국형 장르물에 대한 묘한 불신이 제 마음 한구석에 자리 잡고 있었기 때문이죠. 배달 앱으로 치킨을 한 마리 시켜두고, 가벼운 마음으로 '킬링타임이나 하자'는 생..
저는 오랫동안 민주주의를 그냥 '기본값'으로 여기며 살아왔습니다. 그러다 영화 《변호인》을 보고 나서야, 지금 제가 누리는 이 평범한 일상이 얼마나 치열한 싸움 위에 세워진 것인지 처음으로 실감했습니다. 1980년대 초 군부독재 시절, 독서 모임 하나가 국가보안법 위반으로 둔갑하는 세상이 있었다는 사실을 머리가 아닌 가슴으로 받아들이는 데 이 영화가 결정적인 역할을 했습니다.국가 폭력의 야만성과 깨어있는 시민의 책임이 영화를 통해 나는 국가 권력의 본질과 민주주의의 가치에 대해 매우 깊고 비판적인 생각을 하게 되었습니다. 1980년대 초의 군부독재 정권은 정당성이 없는 자신들의 권력을 유지하기 위해 '국가안보'라는 거창하고 절대적인 명분을 내세웠습니다. 그리고 그 명분 아래, 국가가 가장 먼저 나서서 품..
혹시 영화를 보면서 스크린 속 인물에게서 자신의 모습을 발견한 적 있으신가요? 저는 처음 설국열차를 봤을 때, 꼬리칸 사람들이 씹어 삼키는 새까만 단백질 블록이 그 시절 제가 끼니로 때우던 편의점 삼각김밥과 묘하게 겹쳐 보였습니다. 취업 준비에 치이며 볕도 안 드는 반지하 방에 웅크려 있던 그 시절, 이 영화는 단순한 SF가 아니라 제 삶을 비춰주는 거울 같은 작품이었습니다.설국열차의 세계관: 디스토피아 속 계급 구조설국열차의 배경을 제대로 이해하려면, 왜 인류가 열차 안에 갇히게 됐는지부터 짚어봐야 합니다. 영화 속 세계는 지구온난화(Global Warming)에 대응하기 위해 인류가 인위적으로 냉각 물질을 대기 중에 살포하는 지구공학적 개입, 이른바 성층권 에어로졸 주입(Stratospheric Ae..
관상(觀相)으로 나라의 운명을 좌지우지하려다 비극으로 끝난 이야기. 영화 한 편을 보고 나서 저는 그날 밤 화장실 거울 앞에 한참을 서 있었습니다. 내 얼굴엔 과연 어떤 삶의 흔적이 새겨져 있을까 싶어서요.계유정난이 보여준 관상학의 한계영화 의 배경이 된 계유정난(癸酉靖難)은 1453년 수양대군이 조카 단종을 몰아내고 왕위를 찬탈한 실제 역사적 쿠데타입니다. 여기서 계유정난이란 단순한 권력 다툼이 아니라, 조선 초기 왕권과 신권의 충돌이 폭발한 사건으로 수많은 충신들이 목숨을 잃은 피바람을 뜻합니다. 영화는 이 역사적 사실에 가공의 관상가 내경(송강호)을 등장시켜, 만약 당대 최고의 관상가가 역사의 현장에 있었다면 어떤 일이 벌어졌을까를 상상력으로 풀어냈습니다. 극 중 내경의 관상 실력은 실제로 압도적입..